기다림
김영일 바오로 / 신라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kim6996@silla.ac.kr
어린 시절, 12월이 되면 동생과 꼭 하던 일이 있었습니다. 집에 있는 조금 큰 나무 하나를 방에 올려다 놓고 그 나무를 장식하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전나무는 아니지만, 나무 가지 여기저기에 하얀 솜과 반짝 종이, 그리고 몇 개의 방울을 달고, 깜빡이는 크리스마스 전구를 걸쳐 놓으면 남부럽지 않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었고, 이를 보는 저의 마음은 무척이나 기쁘고 또 설레었습니다. 성탄 시기가 끝나고 다시 장식들을 거두어들일 때의 귀찮음도 이 순간의 기쁨을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그 설렘을 다시 느끼기 위해 하루 빨리 12월이 오기를 바라기도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그 설렘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아마 무엇인가 큰 기쁨과 즐거움에 대한 기다림이었겠지요. 물론 어린 마음에, 성탄 때 받기를 희망하는 선물에 대한 기대도 한 이유였을 겁니다. 그러나 분명 그것만이 아니었음을 지금도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리에 울려 퍼지는 캐럴과 반짝이는 불빛들의 시간을 지나고, 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를 드리면서, 또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가운데 들려오는 장엄한 성가는 어린 마음에도 은총의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조그만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면서 느끼던 설렘은 분명 이 은총의 느낌에 대한 것이었을 테지요. 그래서 저는 예수 성탄 대축일이 언제나 기다려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설렘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마음이 세상의 풍파를 겪으면서 그 은총의 느낌을 잃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세상일에 쫓기다 보니 차분히 그 은총의 기쁨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은총의 기쁨과 이에 대한 설렘은 기다림이 간절할수록 더욱 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셨나 봅니다.
이번 성탄에는 다시 한 번 어린 시절의 그 설렘을 느끼고 싶습니다. ‘왜 예수님이 누추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는지’, ‘왜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갔는지’와 같은 어려운 교리와는 상관없이 그냥 아기 예수님이 오심을 기뻐하며 노래하는 그 은총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더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이 오시는 그 날을 준비하면서 기다려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