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서와 시험
장정애 마리아고레티 / 시조시인, mariettij@hanmail.net
얼른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지요. 누구나 그렇듯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시험 때문이기도 했기에, 학업을 끝내고 국가고시까지 치른 후에는 시험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났는지 모릅니다. 물론 취업 후에도 리포트를 제출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정리하고, 외우고, 성적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시험은 정말 피하고 싶은 것이지요. 그랬음에도,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 여름에는 더위도 보낼 겸 자신에게 숙제를 하나 주었습니다. 감히 손대기가 두려웠던 『간추린 사회 교리』를 통독하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서점에 갔더니 수녀님께서 아주 두꺼운 책을 건네주셨습니다. 본문만도 400쪽이 넘는 분량에 먼저 기가 질렸고, 교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과한 욕심이 아닐까 싶은 데다, 행여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신을 스스로 어느 시위대로 내몰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은근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교회에서 사회를 향하여 내는 소리로는 ‘사형제도 폐지’, ‘낙태 금지’, ‘안락사 반대’ 등의 단편적인 것만 떠올랐기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의 노선이 어떠한지 궁금했던 까닭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시험과는 상관없이 볼 수 있는 일이라 엄두를 내었는지도 모릅니다. 설렁설렁 읽다가 밑줄을 긋기도 하고, 처음부터 보려니 너무 딱딱해서 궁금한 부분부터 펼치기도 하면서…. 그저 제 수준에 알아들을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이기로 하고 말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한 권을 결국 다 읽었습니다. 숙제를 끝낸 것이지요! 기특한 나에게 무슨 상을 줄까 생각하다가 바로 그 책을 읽은 것이 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간추린 사회 교리』는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였습니다. 그 보물 창고를 들여다본 것이 바로 제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상이었습니다. 세상의 어느 종교가 이렇게 인류의 삶을 통찰하였으며, 그것을 망라하여 세상에 내어놓았을까요? 어느 교도권이 종교가 단지 개인적이고 영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세상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새 땅’으로 변화시켜 가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던가요? 이 보물 창고에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온갖 문제들을 접할 때 지혜롭게 판단할 기준과 행동할 지침이 다 들어있었습니다. 이런 삶이 세상 속 누룩이 된다면 전교는 당연한 결실이 될 테지요.
욕심이 생기네요! 여러 평신도 단체들이, 각 본당의 청년들이, 이 책을 읽고 서로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기를, 그럼으로써 우리의 종교에 대한 기쁨과 자부심과 아울러 책임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말입니다. 하긴 바로 이 책이야말로 우리의 ‘마지막 시험’을 위한 가장 요긴한 참고서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