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중심은 ‘아픈 곳’

가톨릭부산 2015.11.06 01:48 조회 수 : 122

호수 2233호 2013.09.08 
글쓴이 이동화 신부 

내 몸의 중심은 ‘아픈 곳’

이동화 타라쿠스 신부 / 노동사목 담당

언젠가 발가락 사이에 상처가 난 적이 있습니다. 사실 큰 상처가 아니었고 가만히 있으면 아프지도 않는데, 걷기 시작하면 발가락들이 부대껴서 여간 아픈 게 아니었습니다. 걸을 때면 내 몸의 온 신경은 그 발가락 사이로 곤두섰습니다. 내 몸의 모든 신경과 관심과 배려는 바로 그곳, ‘아픈 곳’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깨닫습니다. 내 몸의 중심은 머리도, 심장도 아니라 바로 ‘아픈 곳’이라는 것을.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아픈 곳을 향해 우리 몸은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교회공동체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했듯이, 많은 사회학자들도 사회를 인간의 몸에 비유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중심은 바로 ‘아픈 곳’입니다. 그 ‘아픈 곳’을 무시하고 외면하고서는 우리 몸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제대로 일하지도 못하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자거나 쉴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언제나 몸이 아프고 마음이 병든 사람, 그리고 죄인이라고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먼저 찾아가십니다. ‘아픈 곳’ 바로 그곳이 하느님 나라가 선포된 곳이고 하느님 나라가 확산되어 가는 중심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는 이러한 ‘아픈 곳’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과 배려를 가장 중요한 실천의 원리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문헌 <사회적 관심>은 이런 원리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고 표현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의학적으로 ‘아픈 사람’만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아픈 곳’과 ‘약한 곳’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여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한 사람에 대한 치료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치유 즉, 제도와 법률과 관행의 개선이 요구됩니다. 때때로 논쟁적인 사람들은 마치 교회가 편을 가르고 분열을 일으키는 것으로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사랑’은 교회의 2000년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이어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아픈 곳’과 ‘약한 곳’을 무시하고 외면하고서는 우리의 몸이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 그리고 거기서 영감을 받아 우리가 내리는 결단은 당연히 저 무수하게 많은 굶주린 사람들, 곤궁한 사람들, 집 없는 사람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이같은 현실을 무시한다는 것은 저 ‘부자’가 거지 라자로가 자기 집 문간에 누워있음을 모르는 체하는 바와 다를 것 없다.”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사회적 관심>, 4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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