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229호 2013.08.15 
글쓴이 김검회 엘리사벳 

하느님 창조의 신비, 별들의 속삭임

김검회 엘리사벳 /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어릴 적 한여름 밤이면 형제들이 대청마루에 나란히 누워 처마 끝으로 드러난 밤하늘의 별빛을 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유난히 크고 빛나는 아빠별에서부터 아주 작고 희미하게 빛나는 아기별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이름을 붙여주었고 하느님께 하루의 안녕과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쏟아져 내리는 별들을 이불 삼아 노래를 부르다 어느새 잠이 들면, 잠자리로 옮겨주시던 아버지의 따스한 손길이 아직도 생생하다.

예년보다 무덥고 긴 여름, 열대야에 잠을 뒤척이는데, 언제부터인가 아파트 건너편에 들어선 한 건설업체의 네온사인이 밤새도록 집안을 환히 비춘다. 기업 입장에서야 광고의 효과를 보겠지만 피해 주민의 입장에서는 수면과 휴식을 방해받았으니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이렇게 주택가까지 파고드는 과도한 빛 공해는 도시를 넘어 그린벨트까지 미치며 자연생태를 위협하고 있다. 

몇 해 전 완공된 을숙도대교는 건설 과정에서부터 시와 환경단체의 첨예한 대립을 불렀었다. 을숙도 최남단에 자리한 낙동강 하구 습지는 사람의 출입이 통제된 핵심보전 지역으로서 천혜의 자연조건 때문에 해마다 겨울 철새들에게 풍성한 먹을거리와 보금자리를 제공해왔다. 조류학자와 환경단체들은 그곳을 관통하는 다리가 놓이면 새들의 비행 활주로를 빼앗는 것은 물론, 24시간 소음과 빛 공해로 인해 철새들의 수면과 서식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우회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인간중심의 편리함에 밀려 다리가 놓였고 지금은 천연기념물과 국제 멸종위기종을 중심으로 겨울 철새들의 개체 수가 급격히 떨어져 안타깝다. 

한 처음 하느님이 만드신 빛의 감동과 어둠(악)을 밝히는 빛(선)의 소중함도 오늘날 밤과 낮 구별 없는 현란한 불빛 속에 희미해진 것은 아닐까? 큰 별을 따라 아기 예수를 경배하던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도 은하수를 경험하지 못한 도심 아이들에겐 마음 깊이 접근하기 어려운 성경의 이야기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하느님 창조의 신비를 속삭이고, 아름다운 꽃과 열매가 저마다의 빛깔과 향기로, 새들은 온 힘을 다해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한다. 피조물의 절정이며 피조물을 돌볼 소명을 받은 인간은 어떻게 그분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까? 창조질서를 이어가는 신앙인들이 먼저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생태중심의 삶을 지향한다면, 하느님 창조사업의 협력자로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이어갈 것이다. 다시 밤하늘의 별들과 벗이 되어 속삭이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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