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만난 하느님
김상진 요한 / 중앙일보 JTBC 부산총국장, daedan57@hanmail.net
10여 년 전부터 주말에 텃밭 농사를 짓는다. 초기에는 직장 근처 농업기술센터에서 빌려주는 1평 텃밭에 채소를 길렀다. 농사 실력이 조금씩 느는 것을 확인 한 뒤부터 지인의 빈 땅 20여 평을 빌려 농사를 짓는다. 1평짜리 텃밭이 20배 불어났으니 대농(?)이 됐다. 아파트 20평은 비좁지만 텃밭 20여 평은 너무 넓다.
현재 텃밭에는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가 자라고 있다. 항암식품으로 인기 있는 개똥쑥도 심고 땅콩도 심었다. 가을에는 배추와 무우도 심는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직접 기른 배추 50여 포기로 김장을 담궜다.
- 텃밭에 갈 때마다 하느님을 만난다.
퇴비 넣고 씨 뿌리고 모종 심었을 뿐인데 잘 자란다. 씨 뿌린 뒤 새싹이 나오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그 작은 씨앗 속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넣을 수 없는 생명을 심었구나. 바람에 흔들리던 작은 모종이 어느새 커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농약과 비료를 안 뿌려도 일주일 사이에 쑥쑥 자란 채소를 보노라면 경이롭다. 당신 손으로 빚으신 인간을 이롭게 하려고 저 채소까지 길러주시는 구나.
- 텃밭은 기도방이다.
한여름 텃밭은 숨이 턱턱 막힌다. 그 속에서 풀을 뽑노라면 잡념이 사라진다. 손이 풀을 뽑는 일에만 몰두 하다보면 머리는 맑아진다. 주중에 직장과 도시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마치 묵주기도 바치는 것 같다. 맨손으로 느끼는 부드러운 흙의 촉감은 묵주 알 같다. 그러다가 허리를 펴고 얼굴의 땀을 훔치면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이 부족한 인간을 위해 바람을 주시는 구나. 풀을 뽑으면 어릴 때 부모님의 농사를 제대로 돕지 못한 불효가 떠오른다. 저절로 ‘세상을 떠난 부모를 위한 기도’가 된다.
- 텃밭은 이웃사랑이다.
1평 농사는 자급자족이었지만 20평 밭에서 나오는 채소의 양은 엄청나다. 토요일 저녁마다 아내와 텃밭에서 가져온 채소를 다듬는다. 좋은 것은 골라서 사제관과 수녀원에 드리고, 이웃에 나눠준다. 어설픈 농부가 생산한 채소를 고마워 하는 이웃을 보면서 나눔의 가치를 느끼고 있다.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수도회와 수녀원의 일과에 노동이 중요한 시간으로 배정돼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예수님이 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는지도 깨달았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버려진 땅을 구해 텃밭 농사를 지어 보시라. 채소가 아니라 영성이 자라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