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219호 2013.06.09 
글쓴이 정재분 아가다 

불리고 싶은 이름

정재분 아가다 / 아동문학가 mmaaa1@hanmail.net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사람들은 보통 첫 만남에서 상대의 이름을 묻는다. 예쁘고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 있게 이름을 밝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이름을 얘기하면서 미안한 일이나 있는 듯 공연히 목소리가 작아진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는 대로 받아서 평생을 붙어 다니는 이름, 싫어도 바꾸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운명처럼 받아들였던 이름이다.

나는 이름을 소개할 일이 있으면 “저는 정품의 밀가루입니다. 싸다고 불량품 쓰지 마시고 저를 꼭 찾아주세요.” 라고 인사를 하지만 나의 이름이 썩 만족스럽진 않았다.

문인단체 문학 기행 때의 일이다. 회원들에게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이름표를 나눠주면서 각자 불리고 싶은 이름을 써보라고 했다.

마음속에 항상 산책길을 따로 두고 있어서 휴식하고 싶을 때마다 들어간다는 ‘산책길’이라는 이름. 언제나 물기를 머금은 푸르름으로 살고 싶다는 ‘푸름이’. 어부들의 새벽을 깨우는 포구의 풍경이 좋아서 ‘포구’라 이름 붙인 이는 이름처럼 구릿빛 활기가 넘쳐 보였다. 나뭇잎이 무성한 청년기를 지나 인생의 노년기에 접어든 가을에서 자신을 발견한다는 ‘가을’이라는 분은, 열심히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겨울을 맞이하는 나무처럼 인생의 가을을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나는 ‘마술사’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인생을 마술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엄마 품이 그리운 아이에겐 엄마를 만들어 주고, 힘든 삶의 무게에 짓눌린 아버지의 어깨는 마술로 좍~펴게 해주고 싶었다. 마술사가 되면 모든 사람에게 희망과 기쁨을 줄 수 있으니 멋진 이름이라 생각되었다.

불리고 싶은 이름은 이렇게 선택할 수 있지만 내가 앞으로 불릴 이름은 어떤 것이 될까? 인생의 종착역이 가까워질 즈음 나는 과연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지 궁금하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을 비울 줄 알아야 한다. 아쉬워서 움켜쥐다 보면 새로운 보물이 그릇에 채워질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가슴에 달게 될 이름표는 무엇일까? 오랜 기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 자신의 구원만을 찾고, 습관적으로 교회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된다.

우리는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느님의 작품이기에 훌륭한 작품에 걸맞은 이름표를 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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