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218호 2013.06.02 
글쓴이 김기영 신부 

푸른 빛 안고 순례하시는 어머니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 일본 히로시마 선교gentium92@yahoo.co.kr

지난 5월 2, 3일 히로시마 교구 츠와노(津和野)에서는 제64회 ‘오토메 토오게(乙女峠) 마츠리(축제)’가 열렸다. 이곳은 나가사키, 우라카미의 대박해 이후, 1868년부터 4년간 츠와노 지역으로 끌려온 교우 153명 중 36명이 순교 한 곳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네 명의 동정녀들은 선교사 신부님이 모셔온 파티마 성모상을 모시고, 츠와노 성당에서 순교지인 마리아 성당이 있는 고개까지 묵주기도와 아베마리아를 부르며 약 2킬로미터 행렬을 한다. 특히, 올해는 ‘히로시마 교구 설립 90주년’과 ‘신앙의 해’라는 굵직한 테마가 행사의 의미를 더해 주었다. 

이날, 교황 대사님과 함께 한 자리에서 주교님은 두 가지 놀라운 발표를 하셨다. 첫째, 반세기가 넘게 꾸준히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을 위해 츠와노를 교구 공식 순례지로 선언하고, 대사(大赦)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셨다. 둘째, 10년 뒤인 교구 설립 100주년까지 순교자들 가운데 가장 많은 자료가 남아있는 츠와노 순교자들에게 시복, 시성의 은총이 베풀어질 수 있도록 온 교우들이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도와 보속을 바치고, 복음선교에 매진하자고 말씀하셨다. 사실, 시복, 시성에는 기적이 필요하기 때문에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하느님께서 모든 이와 함께 하신다는 큰 표징이 되는 것이다. 부산교구도 순교자 이정식 요한, 양재현 마르티노, 김범우 토마스의 시복 추진 중에 있으니 자매 교구가 어깨동무하고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또 기쁜 일이 있었다. 이날 미사 때, 드물게도 2개의 성모상이 더 모셔졌다. 그 유명한 우라카미 성당의 피폭 성모상, 또 하나는 하 안토니오 몬시뇰이 건네주신 파티마의 성모상이었다. 주교님은 이 성모상들이 시대와 역사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를 위해 전구하시는 성모님을 드러내 준다며 설명하셨다. 

사실 그랬다. 본당에 성모 신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다락방 운동을 하고 있는데, 파티마의 성모상이 없었다. 지난 1월, 잠시 한국에 갔다가 몬시뇰에게 전후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이제 성모님께서 일본으로 가고 싶어하시는 모양입니다.”라고 너털 웃으시더니 당신이 40년도 넘게 고이 간직한 성모상을 덥석 내어주시는 게 아닌가! 사제회의 때, 이 일을 보고했더니 신부님들이 “김 신부! 이번 츠와노 미사 후, 2개의 성모상을 동, 서로 나누어서 교구 내 본당들 순회를 하고, 신앙의 해 폐막 미사에 맞춰서 주교좌 성당으로 돌아오게 하면 어떻겠냐?”고 물어볼 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5월, 이렇게 모든 민족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더없이 맑고 푸른 빛으로 이곳 일본 교회를 감싸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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