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가는 길
이동화 타라쿠스 신부 / 노동사목 담당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는 ‘성 야고보의 여정’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베리아 반도 끝, 지금의 스페인 끝까지 걸어갔던 야고보 사도의 여행길을 뜻합니다. 오늘날에는 프랑스 남부에서부터 시작해서, 야고보 사도가 순교했던 곳에 지어진 꼼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 대성당까지 걷는 800km에 이르는 도보 성지 순례 코스입니다.
말이 800km이지 쉬운 길이 아닙니다. 하루 27km, 하루에 70리 길을 꼬빡 걸어야 한 달에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이 길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 길을 걷고 나면 새로운 깨달음이 생기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뜨여지고, 마음과 영혼이 새롭게 정화된다고 합니다. 새로운 깨달음과 새로운 눈, 새로운 마음과 영혼의 핵심은 바로 ‘비움과 채움’이라고 합니다.
순례의 출발점에서 많은 사람은 배낭 속에 여러 가지 먹을거리, 입을 거리 등을 챙기고, 또 꼭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가지고 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우리가 길을 걸으며 필요한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그것들이 더 큰 짐으로 다가오고, 내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방해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나씩 하나씩 버리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비울 때,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생겨나고, 마음과 영혼이 새로운 힘으로 채워짐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씩 하나씩 비울 수 있을 때 하나씩 하나씩 채워진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을 떠날 때에는 자기 자신을 보호할 지팡이도, 입을 거리도 먹을거리도,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마르 6, 8)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맥락 자체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하신 말씀이지만, 인생이라는 먼 길을 걷는 우리에게, 신앙이라는 긴 순례를 하는 바로 우리에게도 그대로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인생이라는 먼 길을, 긴 순례를 하는 우리가, 이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꼭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던 그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것임을 깨달을 때, 그래서 그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을 때, 우리들의 마음과 영혼은 새로운 것으로 하나씩 하나씩 채워지리라 믿습니다.
길을 떠날 때는, 길을 걸을 때는 비움이 바로 채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