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200호 2013.01.27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당신의 하느님은 몇 번째 입니까?

탁은수 베드로 / ■부산MBC 뉴스총괄팀장estak@busanmbc.co.kr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고 합니다. 산의 가치를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기에 부족하다는 걸 안다면 이보다 더 좋은 대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나, 대피소에서 종종 벌어지는 도난사고는 마음을 찌푸리게 합니다. 동네 뒷산에서도 값비싼 장비와 등산복이 너무 흔해 소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아마 산을 ‘사랑’하기보다 체력단련이나 여가를 위해서 산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요즘은 산뿐만 아니라 신(神)도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고(故) 이태석 신부님의 사랑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나, 선거철에만 성당주변을 맴도는 정치인들은 하느님 상표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아닐까요. 신앙인 중에서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느님을 원망하거나,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의 하느님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겸손하게 하느님을 받아들이기보다 교리공부 좀 했다고, 신앙생활 한지 좀 됐다고 내 생각대로의 하느님을 강요한다면 자신의 맹신과 독선을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바리사이들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하느님은 삼등’이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습니다. 흔히들 하고 싶은 일, 그다음은 해야 할 일 다 하고 여유가 있으면 하느님을 만난다는 지적에 가슴 아픈 공감이 들었습니다. 새해 소원을 비는 사람들도 건강이 첫째고 경제사정이 나아지길, 또 자녀문제가 잘 풀리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몇 번째입니까?

요즘 경제 불황과 각종 갈등으로 인한 사회 혼란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중심을 먼저 잡아야 합니다. 중심을 잡아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를 그려보면 중심의 원리가 보입니다. 십자가의 네 끝이 아무리 멀리 가도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중심은 딱 한 곳입니다. 기대와 희망, 아니면 고통과 좌절이 아무리 크더라도 우리 마음의 중심은 딱 한 곳, 하느님이 계시는 자리뿐입니다. 마음의 중심을 잡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기만 하면 하느님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마음의 중심에 내려오십니다. 하느님은 날 이용하지 않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첫 번째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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