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을 보내며

가톨릭부산 2015.11.05 07:25 조회 수 : 4

호수 2195호 2012.12.30 
글쓴이 박주영 첼레스티노 

임진년을 보내며

박주영 첼레스티노 / 조선일보 부산취재본부장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새해를 맞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12, 임진년이 달랑 하루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쏜살같이 흘렀습니다. 10대 시속 10㎞, 30대 시속 30㎞, 50대 시속 50㎞, 나이가 들면 시간 흐름의 속도는 더욱 날쌔진답니다. 1년이라는 시간의 ‘금’이 끄트머리에 자리한 송년이 되면 그 속도감은 KTX 이상입니다. 

이런 때에 시간을 생각합니다. 시간은 직선으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걸까요? 아니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흐르다 멈추다 할까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을까요? 베이비 붐 세대로 이미 중년을 넘어서고 있는 저에겐 시간이 복선으로, 다차원으로 흐른다고 느껴집니다. 

문득 먼 옛날의 사건이 오늘처럼 선연하기도 하고, 먼 미래의 일로 여겼던 노년이 손에 잡힐 듯 앞에 있습니다. 때론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론 삶의 충만함에 감사 기도를 올리기도 합니다. 그저 죽 한 방향으로 흐르는 단선이었던 시간이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 보이는 때를 심리학자 칼 융은 ‘중년의 위기’라고 했답니다.

주름살이 늘고 흰 머리도 많아지고…, 마음은 20~30대인데 몸은 젊을 때와 다르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오정’, ‘오륙도’ 등 사회적 풍속 변화가 스트레스를 줍니다. 중년은 마치 ‘욥’을 닮았는지도 모릅니다. 사면초가, 고립무원. 그래서 ‘욥기’를 봅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는다면, 나쁜 것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욥 2, 10), 이제 탄식이 내 음식이 되고 신음이 물처럼 쏟아지는구나(욥 3, 24), 나는 전능하신 분께 여쭙고 하느님께 항변하고 싶을 따름이네(욥 13, 3), 아, 지난 세월 같았으면! 하느님께서 나를 보살피시던 날들(욥 29, 2), 이제는 전능하신 분께서 대답하실 차례!(욥 31, 35),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말씀하셨다(욥 38, 1),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욥 42, 5~6)”

욥은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간, 그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빛의 속도로 달려간 임진년의 남은 시간 속에서 멈추어 주님을 찾습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 49) 

융은 중년을 ‘인생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는 시기라 했답니다. 2013년, 계사년에 이어질 저의 새로운 여행이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을 다시 만나는 여정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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