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품질관리
김상진(요한) 중앙일보· JTBC 부산총국장 / daedan@joongang.co.kr
성탄을 준비하면서 옛 생각이 떠오른다. 통행금지와 판공성사(辦功聖事) 표를 받기 위한 찰고(察考)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1년에 단 하루 성탄절만 통행금지가 해제됐다. 자정만 되면 집 밖을 다니지 못하던 그 시절 성탄절 자정미사를 마치고 파출소 앞을 지날 때는 그리스도교 신자의 특권처럼 느껴졌다.
판공성사 표를 받기 위해 찰고를 받던 기억도 새롭다. 신부님 앞에 가서 교리 테스트를 받았다. 찰고를 받기 전에 두툼한 교리책을 한 달 정도 뒤적이며 교리문답을 외어야 했다. 통과하면 성사 표를 받고, 그렇지 못하면 성사 표를 받지 못했다. 찰고를 통과 못하면 다음 주에 재도전해서 통과해야만 했다. 옛날에는 고해소에 들어가기까지 과정이 이처럼 어려웠다. 그러니 고해소에 들어가면 감격스러워 쉽게 나오지 못했다. 어린 마음에 하느님과 부모님, 친구들한테 지은 죄를 낱낱이 고백했다. 그러니 고해소를 나서면 마음이 후련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 뒤 보는 판공성사는 형식적으로 흘러간다. 본당 판공성사 날이 돌아오면 퇴근 뒤 성당으로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통회를 한다. 교회와 가족, 이웃과 사회에 잘못한 일을 생각한다. 차례가 돌아오면 고해소에 들어가서 나의 죄를 열거한다. 신부님으로부터 보속을 받고 성당 구석에 앉아 보속을 한 뒤 집으로 돌아온다.
부끄럽지만 나의 판공성사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그러니 판공성사를 본 뒤 항상 앙금이 남았다. “ 000 했습니다.”는 식으로 죄를 나열하다 보니 내가 처한 상황과 아픔을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성사 보는 방법을 바꾸었다. 신부님께 면담성사를 청한 뒤 성사를 보니 이러한 앙금이 많이 사라졌다. 면담성사를 통해 큰 위로와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고해성사는 하느님과 화해하고 내적 치유를 받는 은총의 과정이다. 형식적인 성사가 되지 않고 영혼의 치유를 체험하려면 성사 보는 방법을 바꾸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국가톨릭 교회는 성탄절과 부활절 등 1년에 두 번 보는 고해성사를 보도록 규정하고 있다. 1년에 두 번 보는 이 고해성사를 판공성사라 한다. 조선 가톨릭 교회 초기에 파견된 외국인 신부님들이 고해성사를 잘 보지 않는 신자들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 ‘연간 2회 고해성사 의무’ 규정을 만든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전해진다.
자주 목욕을 하면 몸이 깨끗해지는 법. 영혼의 품질관리는 각자가 할 수밖에 없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고해성사를 잘 보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성탄절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