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탁은수 베드로 / ■부산MBC 뉴스총괄팀장estak@busanmbc.co.kr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김수환 추기경님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읊으셨던 시구라고 합니다. 고은 선생님의 ‘가을편지’라는 시인데요 노래로도 유명하지요. 요즈음은 이메일이나 휴대폰 문자로 소식을 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가을에는 정성 들인 손글씨에 우표 붙인 편지의 낭만이 어느 때 보다 어울립니다. 왠지 부치지 못하는 편지라도 써보고 싶어지는 가을입니다. 하느님도 가을 타시는 걸까요? 가을엔 어느 때 보다 공들인 편지를 저희에게 보내주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하느님은 직접 만드신 자연을 통해 사시사철 저희에게 특별한 기별을 보내주고 계십니다. 봄에는 따뜻한 햇살과 움트는 꽃망울로,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의 기운으로 말을 걸어 주십니다. 특별히 가을에는 맑은 하늘 편지지에 울긋불긋 단풍으로 멋 내고 가을바람과 낙엽으로 인생의 의미까지 성찰케 하는 뜻깊은 편지를 보내주시는 것 같습니다. 다만 세상살이에 부대끼느라 하늘 한번 올려 보지 못하고, 제 잘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느라 바람 소리 제대로 듣지 못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하느님의 편지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할 뿐이지요. 하느님의 편지는 조용히 자신을 가다듬고 맑고 열린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요즘엔 세상살이에 정신이 팔린 우리 탓에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되는 편지가 많아 하느님이 섭섭해하실 것 같습니다.
가을이 짧아졌다고 합니다. 지구 온난화 같은 환경변화 때문이라니 우리의 욕심 때문에 하느님의 가을편지도 짧아진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그래서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우리도 서둘러 하느님의 편지에 답장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마음 넓으신 하느님이지만 보내기만 하고 대답 없는 편지는 속상할 수도 있으니까요. 마음을 모아,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 하느님이 늘 함께 하신다는 걸 깨닫고 하느님이 주신 본래의 나를 찾기만 하면 편지 쓸 준비는 끝난 셈입니다. 하느님의 우체통은 틀림이 없어서 잊고 지냈던 마음의 소리, 미움에 묻혀 있던 사랑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속삭이기만 하면 착오 없이 전달될 것입니다. 굳이 어려운 말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 이왕이면 가을 단풍 같은 아름다운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죽어서도 사랑할 거라는 조금은 쑥스러운 표현을 담아 뜨거운 연애편지를 보내는 건 어떨까요. 가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