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중에 만난 그분
박 주 영 첼레스티노 / 조선일보 부산 취재 본부장park21@chosun.com
얼마 전 평일미사를 참례했습니다. 대개 격무에 시달린 퇴근 후라 멍한 상태로 앉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날도 그랬지요. 이윽고 복음 봉독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 9, 57∼58) 넋 놓고 있던 머리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일상에서 ‘주님을 따르겠습니다.’란 생각을 얼마나 하나? 주님을 만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의 심신은 녹초가 돼 있었습니다. 그러니 주님은 제 안팎에서 ‘페이드아웃(Fade Out)’된 상태였습니다. 그저 혼자서 아등바등, 노심초사였지요. 그런데 멀리서 들리는 복음 말씀에 이런 심상이 이어졌습니다.
주님을 보고 싶어 앞질러 달려가 돌 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간 키 작은 자캐오, 지붕을 뚫고 들것에 실려 두레박처럼 방 아래로 내려간 중풍환자, 군중이 ‘잠자코 있어라’ 꼬짖자 더욱 큰소리로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친 소경 2명,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예수님의 발과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 주님의 발치를 고집하며 그분의 말씀을 듣던 마리아, 서둘러 가서 구유에 누운 아기를 만난 목자들, 성전에서 예수님을 애타게 찾았고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신 성모님…….
현실에서 실제로 주님을 만난 여러 사람의 반응, 행동이 영화 장면처럼 지나갔습니다. 영원한 시간의 주재자, 무한한 공간과 그 안 생명·사물의 창조주, 만물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 대부분은 일상 속에서 그분을 만났을 겁니다. 그저 평소 알았던 자기 동네의 목수거나 아는 게 많은 랍비 혹은 잘나가는 예언자쯤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자캐오, 중풍환자, 예리코의 소경,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 등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달려가고, 나무에 올라가고, 외치고, 지붕을 뚫고, 곁에 있기 위해 남의 비난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겐 예수님이 남다르게 다가왔던 듯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생기, 활기가 되살아난 것입니다. 어쩌면 저는 미사 중에 ‘나는 있는 자이다’, ‘나는 생명이다’하신 하느님의 외아들, 구원자 예수님을 만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