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힘이 알려주시는 것

가톨릭부산 2015.11.05 02:39 조회 수 : 30

호수 2177호 2012.09.02 
글쓴이 김기영 신부 

그 힘이 알려주시는 것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세 자매 교구의 교류를 위해 필리핀 인판타 교구를 다녀왔다. 부산에서 14명, 히로시마에서 9명의 그룹이 참가했다. 특히, 이번에는 교회의 꿈나무인 중, 고등학생들이 많이 와서 기뻤다. 현지 고등학생들과도 같은 또래끼리 자연스러운 교류가 이루어졌다. 출발 전 마닐라 시내를 덮친 태풍 소식으로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9일 기도 안에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성모님께 맡겨 드리고 무더운 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도착 당일 늦은 밤, 깜짝 놀란 예수님 얼굴의 재밌는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마닐라 공항에서 발이 묶여 어쩔 줄 모르던 귀염둥이 친구들의 첫인상이 새롭다. 티셔츠에 새겨진 “koinonia(친교)”라는 말과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요한 17, 21)라는 말씀 안에 왜 우리가 이렇게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그 고생을 하면서까지 여기 모이게 됐는지 그 해답이 숨어있는 듯했다. 
몇몇 친구들은 태어나서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의 부담을 안고 오기도 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왔을까? 낯선 옷차림과 거리 풍경, 들어도 의미를 알 수 없는 언어와 문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스테이를 통해 마음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어 아직 콩닥대는 순진한 가슴들을 쑥~하고 현지인들의 삶 한가운데로 이끄시는 그 힘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서로 선물을 교환하고, 노래와 율동을 선보이고, 음식을 함께 나누지만 이는 그 힘을 아는 서막에 불과했다. 2004년 대홍수로 모든 것이 다 떠내려가는 와중에 한 청년의 생명을 구하겠노라 한 명의 사제를 거룩한 희생으로 이끈 힘, 집과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한 사람들에게 찬란한 무지개를 보이시며 희망을 불어넣으시는 힘, 더 오래전, 전쟁으로 상처입은 사람들의 마음에 다시금 용서와 평화를 심어주는 그 힘이 우리를 이 자리로 이끌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우리 앞 세대가 어떻게 살아왔고, 또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서로가 얼굴을 맞대서 보고 배우고 또 알은 만큼 기도하고, 사랑하라고 초대해주셨으리라 믿는다. 
빠듯한 일정 중에도 마지막 날 카르멜로 수녀원에서의 미사는 매우 인상 깊었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강론을 듣고 전하며 거양된 성체를 올려다보았을 때, 문득 가슴 속에 낯익은 울림을 느꼈다. 이 울림은 작년 부산 순례 때 한국, 일본 교우들이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느꼈던 감동과 흡사한 것이었다. 가슴 한쪽에 시원한 바람이 스쳐 갔다. 기쁨과 감사로 차오른 마음속에 이 복된 초대의 의미가 글자를 넘어서는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평화”라고 쓰고, 이렇게 느끼는 것이라고 그 힘이 알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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