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사건
박주영 첼레스티노 / 조선일보 부산취재본부장?park21@chosun.com
상상은 엉뚱하기도 하지만 재밌기도 합니다. 전 성경을 볼 때 종종 상상합니다. 이 상상에 따르면 신약의 근본은 ‘예수님 사건’입니다. 신약 성경이 ‘예수님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라 상상하는 거지요. 직업의식의 발동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보도는 크게 2가지 범주로 이뤄져 있습니다. 하나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팩트만 전달하는 ‘스트레이트’이고 다른 하나는 그에 대한 주석이나 설명을 더한 ‘해설 박스’입니다. ‘스트레이트’는 4복음입니다. 마르코, 마태오, 루카, 요한이지요. ‘사도행전’은 4복음의 ‘속보성 스트레이트’입니다. 필립보, 로마, 데살로니카서 등 나머지 대부분의 신약은 ‘해설 박스’입니다.
‘스트레이트 기사’라도 기자(복음사가)들의 주제 의식에 따라 그 시작(기사에선 이를 ‘리드’라 합니다)과 스타일, 내용 구성이 다릅니다. 마르코 복음사가의 리드는 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고 구원자라는 고백입니다. 그 뒤의 팩트들은 이 주제 의식을 입증하는 논거들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활동과 예수님의 세례로부터 죽음과 부활까지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을 보도하는 것이지요. 이 보도는 행적을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유대인적 혈통에 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유대적 혈통과 공생활에 앞선 그의 탄생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또 다른 복음보다 산상설교 등 ‘예수님 강론’의 내용을 보다 더 많이 싣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은 앞의 두 복음서에 비해 리드가 좀 더 깁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에 앞서 세례자 요한의 탄생 이야기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리드에서 밝힌 것처럼 ‘예수 사건’을 공생활 이전 ‘탄생’에서부터 순서대로 서술하는 것이지요. 루카 복음은 다른 복음보다 시점을 보다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육하원칙’에 좀 더 충실한 셈이지요.
‘요한 복음’의 시작은 한편의 장엄한 서사시입니다. 철학적이기도 하구요. 4복음 중 ‘리드’가 가장 깁니다. 말씀, 생명, 빛의 상징이 심오합니다. 이 주제 의식에 따라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공생활에 대해 보도합니다.
전 성경 전문가가 아니어서 이런 상상은 그냥 개인의 엉터리 공상에 가까울 겁니다. 하지만 ‘예수 사건’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이라는 거지요. 저라면 어떻게 보도할까요? 이는 우리 모두의 몫일 겁니다. 말씀이 닫힌 바가 아니어서 지금 우리의 응답, 반응이 더해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틈새, 여백이 남아있는 거지요. 그게 예수님의 소통 방식인지 모르겠습니다. 빛은 지금도 비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