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538호 2019.0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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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권순호 신부 |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
권순호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오늘은 성지주일입니다. 예전 같으면 독서자들과 신부님들이 독서와 복음을 읽고 우리들은 그냥 자신의 자리에 앉아 듣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복음에서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치는 군중의 역할을 미사에 온 신자들은 떠맡게 됩니다. 참 귀찮게 하는 주일입니다.
2016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업체의 19세 청년노동자가 유지보수업무 도중 지하철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었습니다. 특히 사망 당시 발견된 컵라면 하나와 숟가락, 젓가락은 비정규직 외주업체 노동자로 밥 먹을 틈도 없이 일했던 고인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붙여진 추모 글 중에 다음과 같은 짧은 길이 적혀 있었습니다. “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 글은 이성복 시인의 ‘그날’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이성복 시인이 이 시를 썼던 당시 그날은 어떤 날이었을까요? 그날은 구의역에서 젊은 노동자의 죽음과 같은 사건이 일어났거나, 세월호 같은 참사가 일어났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날에 울음을 우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관심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합니다. “그날에 그의 병은 그만의 병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의 병이었다. 우리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그날에 누구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인 양 아파하셨던 그분은 우리의 고통을 끌어안고 죽음의 십자가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은 다른 죄수들의 죽음과 다를 바 없는 그저 또 다른 구경거리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분의 죽음을 지켜보는 구경꾼이 되고, 방관자가 됩니다.
오늘도 작년과 같이, 재작년과 같이, 그날과 같이, 우리도 전례 전문가인 신부님들과 독서자들에게 전례를 맡기고 멀찌감치 물러나 앉아 그저 방관자나 구경꾼이 되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지만, 교회 전통은 우리 모두를 그 날에 베드로가 그분을 3번이나 배신하고 닭의 울음소리에 꺼억 꺼억 목 놓아 울었던 그 울음으로 초대합니다. 그분을 찌른 것은 나의 죄요, 그분을 아프게 하는 나의 병이었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슬퍼해야 합니다. 그분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파스카를 지낼 것입니다. 그래야 그 날처럼 예수님과 함께 일어나 영광의 부활을 맞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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