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사람
정재분 아가다 / 아동문학가 mmaaa1@hanmail.net
백양산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면 달맞이꽃이며 황금빛 루드베키아가 활짝 웃으며 반겨준다. 누가 이렇게 예쁜 꽃길을 만들었을까? 나지막한 나무마다 갖가지 리본마저 팔락인다. ‘소리 없이 핀 꽃 아름답다’, ‘만지면 아파요’ 등등 철자법도 서투르지만 골판지에다 어설프게 써 붙인 글들에서 정성이 엿보인다.
이렇게 고운 꽃길이 조성되기까지엔 어떤 할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십 년 동안 척박한 산길을 손질하고 어둠 속에서 남모르게 꽃을 심었다. 공명심을 위해서가 아니었기에 날이 밝으면 누가 볼까 봐 서둘러 자리를 뜨곤 했다. 나 한 사람의 수고로 다른 이를 기쁘게 할 수 있다는 한결같은 봉사심이 이렇듯 아름다운 꽃길을 만든 것이다.
세상과 타인을 위해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많다. 선교사는 믿음의 씨앗을 뿌릴 것이요, 호스피스는 마지막 가는 영혼을 위해 정성을 바칠 것이다. 백양산의 할아버지처럼 자신의 희생으로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 밖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이 봉사하는 손길들이 있어 세상은 한결 아름다워진다.
모든 변화는 ‘지금 여기서’ 시작되며 순간의 씨앗이 모여 일생의 열매가 된다. 성경에도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마르 4, 13∼20 참조)가 있다. 길바닥에 뿌려진 씨앗은 세례를 받자마자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사람이고, 돌밭에 뿌려짐은 마음속에 뿌리가 깊지 못한 경우일 것이고,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앗은 세상 걱정과 욕심이 가로막아 열매를 맺지 못함이요,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진 경우는 앞서 꽃 가꾸는 할아버지 같은 경우가 아닐까.
나는 세상에 어떤 씨앗을 뿌렸을까. 혹여 남이 뿌린 씨앗의 열매만 탐하고 살지는 않았을까. 나름대로는 바쁜 척하고 쫓아다녔지만 성당이나 사회의 봉사가 나의 만족이나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이기심을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정해진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씨앗으로 뿌려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