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 스마트 폰

가톨릭부산 2015.11.04 08:43 조회 수 : 274

호수 2167호 2012.07.01 
글쓴이 김상진 요한 

미사와 스마트 폰

김상진 요한 / 중앙일보ㆍjtbc 부산총국장 / daedan57@hanmail.net

얼마 전 스마트 폰에 ‘매일미사’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했다. 미사 때 매일미사 앱을 실행하면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보편지향기도 등 매일미사 책에 나오는 내용을 다 볼 수 있다. 하지만 미사 중에 스마트 폰을 열 때마다 뒤통수가 따갑다. 다른 신자들이 ‘멀쩡한 어른이 미사는 안보고 애들처럼 스마트 폰으로 장난치나?’ 하는 수군거림이 들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스마트 폰을 무릎에 놓고 혼자만 보다가 이제는 손에 들고 뒤쪽에 앉은 신자들이 다 보이도록 사용한다. 스마트 폰 화면에 뜨는 내용을 보고 오해하지 말라는 뜻으로.
미사 때 스마트 폰을 사용하면서 갈등은 시작됐다. 너무 편리함에 젖어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신자라면 작은 불편을 감내하고 희생과 봉사의 자세는 기본 아닌가. 미사에 필요한 책 몇 권 들고 다니는 것을 귀찮아하는 내 모습을 하느님은 어떻게 보실까?
어릴 적 성당 다닐 때가 떠올랐다. 성당까지는 아버지 손을 잡고 논과 미나리꽝을 지나 1시간쯤 걸어야 했다. 산 중턱에 있던 성당 바닥은 마룻바닥이었다. 겨울 마룻바닥은 차가웠고, 10여 개밖에 없던 방석은 어른들 차지였다. 어쩌다가 마룻바닥에 옹이구멍이 난 곳에 앉으면 미사를 봉헌하는 동안 옹이구멍으로 찬바람이 나왔다. 성경책으로 구멍을 막아도 냉기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미사는 라틴어로 진행됐고 1시간 30분 이상 걸린 것으로 기억한다. 성당에 가려면 왕복 소요시간과 미사 시간을 합쳐 4시간 가까이 걸렸다. 꿇어앉아 미사를 보는 것도, 추위 속에서 성당을 오가는 것도 힘들었다. 새벽 미사에 다녀온 날은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요즈음 미사는 너무 수월하다. 의미도 모르는 라틴어를 따라 할 필요도 없고, 성당도 가깝다. 추우면 난방을 하고 더우면 에어컨을 켠다. 어릴 적 미사 참례를 떠올리며 스마트 폰 사용을 자제하기로 했다. 매일미사 책과 성가책, 가톨릭 기도서 등을 갖고 성당 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어릴 적 미사는 힘들었지만 성당을 다녀오면 뿌듯했었다. 추위와 불편을 견디었던 내 영혼은 그 시절이 더 맑았었다. 다시 책을 들고 미사에 참례하니 전혀 다른 맛이 와 닿는다. 종이를 손으로 만지면서 주요 부분에는 줄을 긋기도 하고, 신부님 강론을 매일미사 책 한쪽에 메모도 한다. 그래도 편리한 스마트 폰 매일미사 앱은 버릴 수 없다. 나약한 인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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