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먼저 화해하자
정경수 대건안드레아 / 수필가
이제 우리나라도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인구 5천만 명이 되는 클럽(20-50클럽)에 들었는데, 60년대의 궁핍을 기억하면 오늘날 우리의 경제와 국력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놀랄 뿐이다. 긴 식민통치의 고초와 동족끼리의 전쟁을 치르고 아직도 휴전인 채 분단된 상황에서, 100년이라는 기나긴 고난을 헤치고 이렇게 도약을 한 나라가 없기에 우리 민족의 뛰어난 저력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다. 지구 상 200여 개의 나라 중, 지금까지 단 여섯 국가(일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만 이 클럽에 들었고, 마지막 가입국인 영국에 이어 16년 만에 우리나라가 합류했다 하니 더욱 기쁘다. 그리고 앞으로 당분간 나올 가망이 없다 하니 으쓱해진다.
그러나 이 같은 성장에 비해 우리 내면의 행복지수를 살펴보면 그렇게 높지 않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행복하기 위해 공부도 하고 결혼도 하며 신앙도 가지는데, 이런 우리의 모든 일상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제동 잃은 철마와 같다면 억측일까? 경쟁에 뒤질세라 세계 다른 나라보다 앞서 가는 이혼율과 자살률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누를 길이 없다.
특히 어린 학생들이 주변의 왕따에, 또 과중한 공부를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거나, 오늘날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주신 노인들이 외로움과 고독, 질병과 가난, 또는 가정의 불화로 귀한 생명을 스스로 끊으니 남아 있는 가족과 후손들의 정신적 고통과 불안이 얼마나 클까! 게다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한 신혼부부도 적지 않게 이혼을 하는가 하면 황혼 이혼도 늘어나, 가정의 파괴가 가져올 그 후유증을 생각해 보면 경제적 부에 따라가지 못하는 정신적 피폐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이 지경이 되었을까? 작은 교회인 가정이 이러고서야 어찌 국민적 화합이 되며 일치를 이루고 나아가서는 민족의 화합과 일치를 이룰 수 있겠는가? “주님을 경외하며 가진 적은 것이, 불안 속의 많은 보화보다 낫다” 고 한 잠언의 말씀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화해는 용서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지만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끊임없이 우리와 화해를 해 오신 것처럼 우리도 먼저 나를 용서하고 화해해야겠다. 공자께서도 종신토록 행할 말 하나를 서(恕), 즉 용서라고 하셨으니 그 실천의 어려움을 알겠거니와,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인내로써 자신을 극복하고 자기와 화해하는 국민적 교육 운동이라도 펼쳐야 할까 보다. 경제적 부에 걸맞은 정신적 균형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우리나라가 ‘20-50클럽’의 진정한 회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