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삼촌

가톨릭부산 2015.11.04 17:09 조회 수 : 137

호수 2146호 2012.02.05 
글쓴이 하창식 프란치스코 

작은삼촌

하창식 프란치스코 / 수필가 / csha@pnu.edu

임진년 새해가 밝은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월 첫 주로 접어들었다. 새해 들어 다짐했던 자신과의 약속이 벌써 허물어져 버렸다. 이래선 안 되는데 하면서도 매년 같은 내 모습이 참으로 한심스럽게 여겨진다. 이런 걸 두고 작심삼일이라고 한다지. 요즈음 시중에 유행하는 개그 한마디.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느 고학년 초등학생에게 “자신이 결심한 바를 사흘도 못돼 깨어버리고 마는 경우를 두고 고사성어로 무엇이라 하지?” 하고 물었다. 그러면서 ‘작O삼O’이라는 힌트를 주었다. 그랬더니, 그 학생 왈, “작은삼촌!”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는 우스갯소리이다. 작은삼촌이 매양 그런 모습을 보이니 조카 눈에는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은삼촌’이 정답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어떤 모임에서 그 넌센스 퀴즈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그러면서 나도 그 작은삼촌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흘이 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이랬다저랬다 하는 나의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귓불이 빨개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난 때를 생각해보니 올해로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세월이 지났다. 예수님의 몸, 거룩한 그 성체를 처음 받아 모시던 그 뜨거웠던 날, 여러 가지 다짐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성경 자주 읽기, 기도 빼먹지 말기 등.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어느 하나 제대로 지킨 게 없다. 사회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해가 지날수록 더욱더 영락없는 작은삼촌이 되어왔던 것 같다.

예수님의 하루를 그린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가난하고 병든 이웃과 함께하며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눈물을 닦아 주신 예수님! 그러면서도 틈날 때마다 늘 기도하신 예수님! 그런 예수님 일상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자연히 나의 하루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 물었다. 아침, 저녁 기도는 제대로 하고 있는가? 식사 전 성호는 남이 볼까 봐 조그맣게 긋거나 고개만 숙여 기도하진 않았나? 묵주기도는? 내 가족이나 이웃에게 혹시라도 내 행동이나 말로 말미암아 마음의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까? 누군가를 위한 선행을 한 가지라도 베푼 적은 있었나? 등. 어느 하나 자신 있게 “예” 하고 답할 수 있는 항목이 없다. “그러니 인간이지!” 라고 스스로 위안해보지만 그래도 찜찜한 구석이 많다.

오늘 하루 한 시간, 아니 단 일 분만이라도,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사는 시간이 되도록 노력해야지 하는 다짐을 새롭게 한다. 적어도 이번 주만큼은 작은삼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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