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들에게 배우다

가톨릭부산 2015.11.04 07:48 조회 수 : 47

호수 2132호 2011.11.06 
글쓴이 김기영 신부 

순교자들에게 배우다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1869년 9월, 에도시대, 그리스도교의 탄압이 극에 달했을 무렵, 나가사키의 우라카미에서는 4번째 천주교 신자 검거사건이 있었다. 당시 오오우라성당의 천주교 신자 117명이 츠루시마, 이른바 학섬으로 유배를 당했고, 1873년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기까지 18명의 신자가 순교하였다. 

매년 10월 10일, 오카야마 지구에서는 츠루시마로 순례를 떠난다. 전날 저녁 7시, 오카야마 성당을 출발해서 밤새 40km를 걷는다. 이윽고, 목적지 히나세항구에 도착. 피곤한 몸이지만, 연신 서로를 격려하며 배를 탄다. 푸른 바다와 감귤 나무로 둘러싸인 섬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렇게 경치가 아름다울 수가 없다. 더불어, 이 섬이 품고 있는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인생의 항해에 지쳐 헤매는 이들을 신앙이라는 안전한 포구로 이끌어준다. 

전해오는 이야기 하나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들 중에는 초등학생 쯤 되는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극심한 굶주림 속에 시달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다 못한 관원 하나가 아이에게 낚시를 해도 될 것을 허락했다. 고기가 낚이자 관원이 이런 말을 했다. “배교를 하면 그 고기를 가져가도 된다”고 하자, 그 아이는 “그렇게는 못하겠는데요”하면서 다시 고기를 바다 속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순교지를 방문할 때, 우리는 가능한 한 그들이 갔던 길을 함께 걷고자 한다. 왜? 무엇 때문에? 그것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수난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그들의 신앙을 본받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런 그들에게는 특별한 은총이 주어진다. 무슨 은총일까? 그것은 인생의 시련과 고통을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힘을 말한다. 흔히,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인생의 어려움들 앞에서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냐”면서 허공을 향해 부르짖다 결국 그 고통의 무게에 짓눌려 쓰러지고 다시는 못 일어 날 때가 많다. 

하지만 밤새 순교자들이 갔던 이 길을 함께 걸었던 사람들은 다르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내려 감기고 발바닥에는 물집이 잡히는 등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기억하는 생생한 아픔의 깊이만큼, 내 인생의 알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훨씬 수월하게 받아들인다. 오히려 그 고통을 주님 수난에 구체적으로 동참하는 기쁨과 영광으로 바꾸어 버리고 만다. 이 마음의 변화야말로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야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기적이 아닌가 싶다. 
신앙은 이러한 놀라운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마음의 보물상자다. 참으로 내 삶의 알 수 없는 고통조차 감사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내 신앙도 그들처럼 천국을 향해 자라남을 순교자들에게 배우고 왔다.

호수 제목 글쓴이
2876호 2025. 6. 29  주님 사랑 글 잔치 김임순 
2875호 2025. 6. 22  “당신은 내 빵의 밀알입니다.” 강은희 헬레나 
2874호 2025. 6. 15  할머니를 기다리던 어린아이처럼 박선정 헬레나 
2873호 2025. 6. 8  직반인의 삶 류영수 요셉 
2872호 2025. 6. 1.  P하지 말고, 죄다 R리자 원성현 스테파노 
2871호 2025. 5. 25.  함께하는 기쁨 이원용 신부 
2870호 2025. 5. 18.  사람이 왔다. 김도아 프란치스카 
2869호 2025. 5. 11.  성소의 완성 손한경 소벽 수녀 
2868호 2025. 5. 4.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하십시오. 김지혜 빈첸시아 
2865호 2025. 4. 13.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안덕자 베네딕다 
2864호 2025. 4. 6.  최고의 유산 양소영 마리아 
2863호 2025. 3. 30.  무리요의 붓끝에서 피어나는 자비의 노래 박시현 가브리엘라 
2862호 2025. 3. 23.  현세의 복음적 삶, 내세의 영원한 삶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2861호 2025. 3. 16.  ‘생태적 삶의 양식’으로 돌아가는 ‘희망의 순례자’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2860호 2025. 3. 9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5년 사순 시기 담화 프란치스코 교황 
2859호 2025. 3. 2  ‘나’ & ‘우리 함께 together’ 김민순 마리안나 
2858호 2025. 2. 23.  예수님 깨우기 탁은수 베드로 
2857호 2025. 2. 16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최경련 소화데레사 
2856호 2025. 2. 9.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안경숙 마리엠마 수녀 
2855호 2025. 2. 2  2025년 축성 생활의 날 담화 유덕현 야고보 아빠스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