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의 야구공

가톨릭부산 2015.11.04 01:48 조회 수 : 59

호수 2126호 2011.09.25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최동원의 야구공

탁은수 베드로

딸들은 야구를 좋아한다. 롯데 팬이다. 이대호와 강민호에 열광한다. 하지만 최동원은 모른다. 불꽃 승부사 최동원이 하늘로 돌아간 날, 언론의 대서특필을 보고 딸들이 물었다. “아빠 최동원이 누구야?” 난 최선을 다해 어릴 적 나의 우상에 대해 설명했지만 딸들이 아는 최동원과 내가 아는 최동원은 다르다. 그건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세월의 차이이고 경험의 차이이고 추억의 차이이다. 

반짝거리는 금속 안경에 짧게 깎은 머리. 용수철 같은 역동적인 투구로 무시무시한 직구를 뿌려대던 최동원. 위기 상황에서도 칠 테면 쳐보라는 듯 승부를 피하지 않는 배짱에 당시 야구팬들은 숨 막히는 희열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직구가 전부가 아니었다. 그가 던진 커브는 당대 최고였고 때로는 ‘아리랑 볼’이라 불린 극단적인 느린 공으로 타자들을 상대했다. 직구와 변화구의 적절한 조화로 그는 최고의 투수가 됐다. 나도 지금 그랬으면 좋겠다. 인생의 승부에 빠른 직구만을 던져대던 청춘을 지났으니, 이제는 느릿느릿 쉬어가는 변화구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제 앞만 보고 달리며 속도만 강조하기보다 주위를 둘러보며 같이 가는 여유를 가져야 할 나이가 됐다. 

부산이 낳은 최고의 투수, 최동원. 하지만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대쪽 같은 자존심에 재야에 머무는 동안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암세포가 퍼져 나갈 때에도 그는 투병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병마에 흔들리는 모습보다 씩씩하게 마운드를 오르던 모습으로 남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 나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내가 돌아갈 고향은 어디일까? 하루하루 살기에 급급한 난 가끔씩 돌아갈 고향 길을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최동원은 마지막 숨을 놓을 때까지 어머니가 쥐어준 야구공을 쥐고 있었다. 사위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야구공은 그의 전부였는지 모른다. 그럼 내 인생이 다 하는 날, 난 무엇을 쥐고 있을까. 생명을 다 해가면서까지 돈이나 땅문서 같은 세상의 욕심을 쥐고 있을 수는 없다. 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 가서 아름다웠다고”말하고 싶다. 즐거운 소풍 마치고 노곤한 몸을 쉬러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와 같은 편안한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미움과 미련을 모두 내려놓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길. 행여 길 잃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상징인 십자가와 날 위해 기도해 주실 성모님께 드릴 묵주. 세상의 마지막 숨을 쉴 때 그것만은 꼭 쥐고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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