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삐용’합시다

가톨릭부산 2015.11.04 01:42 조회 수 : 193

호수 2121호 2011.08.28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빠삐용’합시다

탁은수 베드로

모임에서 건배사를 하게 될 때가 있다. 술잔 앞에 놓고 긴 건배사는 분위기 깨기 십상이다. 간단하면서도 주목을 살 수 있는 건배사를 하기란 쉽지 않다. 최근에 내가 자주 하는 건배사는 ‘빠-삐-용’이다. 교회 사목에 어울리는 말 같기도 하다. ‘빠삐용’이란 “빠지지 말고 삐치지 말고 용서하며 살자”란 뜻이다. 

빠지지 맙시다. 
공동체의 기본은 참여에 있다. 가톨릭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이고, 하느님 나라의 한 가족이다. 포도를 알갱이로 팔지 않고 한 송이씩 팔 듯 포도나무의 가지인 우리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하느님 앞에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듯이 공동체에 내가 빠진 자리를 대신 메워줄 사람은 없다. 성당의 큰 봉사자가 아니어도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신자의 의무이다. 

삐치지 맙시다. 
간혹 성당에서 인간 관계의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성당의 봉사자나 때론 수도자들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성당은 친목 단체가 아니다. 내 생각과 비슷하고 내가 좋아할 사람들만 있는 곳이 아니다. 나의 친소와 관계없이 모두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들이다. 형제끼리 싸우면 좋아할 부모 없듯, 하느님도 반목하는 자녀들을 곱게 보실 리 없다. 내 생각만 주장하며 공동체에 불화를 일으키고 투정을 부리기보다,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대해야겠다. 

용서합시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누군가를 용서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많은 용서를 받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주님을 배신하고 세속의 즐거움에 빠져 지낸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리는 고통 속에서도 주님은 언제나 나를 용서하셨다. 행여 자존심이 상하거나 쑥스러워서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 힘든 대상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주님께 기도드리는 건 어떨까. 이미 내 마음을 다 아시는 주님이 용서와 화해의 방법까지 일러 주실지 모른다. 

여름의 뒷걸음질이 끝나면 만나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 지금은 귓가에 흰머리가 숭숭한 성당의 주일학교 친구들. 신부님, 수녀님께 혼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가끔씩 만나 한잔 하자고 권할 생각이다. 물론 그때도 내 건배사는 ‘빠삐용’일 것이다.

호수 제목 글쓴이
2876호 2025. 6. 29  주님 사랑 글 잔치 김임순 
2875호 2025. 6. 22  “당신은 내 빵의 밀알입니다.” 강은희 헬레나 
2874호 2025. 6. 15  할머니를 기다리던 어린아이처럼 박선정 헬레나 
2873호 2025. 6. 8  직반인의 삶 류영수 요셉 
2872호 2025. 6. 1.  P하지 말고, 죄다 R리자 원성현 스테파노 
2871호 2025. 5. 25.  함께하는 기쁨 이원용 신부 
2870호 2025. 5. 18.  사람이 왔다. 김도아 프란치스카 
2869호 2025. 5. 11.  성소의 완성 손한경 소벽 수녀 
2868호 2025. 5. 4.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하십시오. 김지혜 빈첸시아 
2865호 2025. 4. 13.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안덕자 베네딕다 
2864호 2025. 4. 6.  최고의 유산 양소영 마리아 
2863호 2025. 3. 30.  무리요의 붓끝에서 피어나는 자비의 노래 박시현 가브리엘라 
2862호 2025. 3. 23.  현세의 복음적 삶, 내세의 영원한 삶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2861호 2025. 3. 16.  ‘생태적 삶의 양식’으로 돌아가는 ‘희망의 순례자’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2860호 2025. 3. 9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5년 사순 시기 담화 프란치스코 교황 
2859호 2025. 3. 2  ‘나’ & ‘우리 함께 together’ 김민순 마리안나 
2858호 2025. 2. 23.  예수님 깨우기 탁은수 베드로 
2857호 2025. 2. 16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최경련 소화데레사 
2856호 2025. 2. 9.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안경숙 마리엠마 수녀 
2855호 2025. 2. 2  2025년 축성 생활의 날 담화 유덕현 야고보 아빠스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