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속의 한 줄기 빛

가톨릭부산 2015.11.04 01:37 조회 수 : 21

호수 2114호 2011.07.17 
글쓴이 김기영 신부 

암흑 속의 한 줄기 빛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일전에, 피정 지도를 갔던 본당의 신자들이 성당을 찾아왔다. 차를 한 잔 나누면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같이 온 자매 중 하나가 굉장히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설마 했더니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큰 고통을 짊어지고 있었다. 
이 자매는 결혼한 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아 남편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때의 충격으로 아기마저 유산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시댁에서는 이런단다. “하필이면 너 같은 게 우리 집에 들어와서 우리 아들이 빨리 갔지 않느냐? 서방 보내고, 애까지 죽인 년이 뭔 낯으로 살아? 다 너 때문이니까 나가 죽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 세상에 이것이 정녕 사람의 입에서 나올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그 말의 사실 여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자매의 손목을 보아하니 알것 같았다. 벌써 두 번이나 그은 흉터가 남아있었다. 처음에는 자기 탓이 아니라고 수없이 부정을 했지만, 반복해서 들려오는 주변의 목소리는 결국 스스로를 탓하게 만들어버렸다. 이제는 완전히 세뇌가 되어버린 듯 했다. 그렇게 수년간 매일같이 죽은 남편의 환영을 보면서 자살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어릴 때 영세를 받았기 때문에 신앙을 통해서 극복할 것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남편과 애까지 데리고 가신 하느님과는 말도 하기 싫다고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의지할 곳이라고는 그분 밖에 안 계신데. 이야기 상대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이야기 하라고 연락처를 주었다. 그 자매가 다녀간 이후로 나도 바빠졌다. 더 많이 기도하게 되었고, 더 많은 희생을 바치게 되었다. 내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셨는지 어느 날, 이 자매로부터 편지가 왔다. “... 신부님, 도와주십시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할지 막막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도 밖에 없는데…. 그러던 중, 이 자매의 집을 한 번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하자마자 집 안 구석구석에 성수를 뿌리고, 묵주기도를 함께 할 것을 권했다. 장장 4시간을 설득한 끝에 고백성사와 병자성사를 받게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더니, 이런다. “신부님, 이상해요. 마음 속을 짓누르던 바위 같은 것이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아요.” 
‘아, 주님… 정말 함께 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놀람과 감사에 눈물이 다 나왔다. 이제, 겨우 이 자매는 홀로서기를 할 준비가 된 듯하다. 하지만, 아직 많은 기도와 희생을 필요로 한다. 사랑의 마음으로 오늘 미사에 오신 교우들께 이 불쌍한 자매를 위해 주모경 한 번씩 바쳐 줄 것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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