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에 건배

가톨릭부산 2015.11.04 10:34 조회 수 : 55

호수 2112호 2011.07.03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내 청춘에 건배

탁은수 베드로

장대 같은 비와 작렬하는 햇살을 견디더니 어느새 녹음이 짙푸르다. 돌아보면 내 청춘도 그러했으리라. 세상의 궂은 비나 메마른 사막의 언덕쯤은 겁내지 않고 내달릴 푸른 젊음의 시절이 있었으리라. 청춘의 시절, 난 세상에 밀리지 않을 튼튼한 다리와 불의에 굽히지 않을 다부진 어깨를 갖고 싶었다. 도시의 미끈함 보다는 원시의 생명력을 동경했다. 혁명가나 투사는 아니었지만 불의를 참지 않고 옳은 일의 위험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이해관계를 따지기보다 의리에 무거운 남자이고 싶었고 뜨겁고 두려움 없는 사랑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청춘의 시간은 화살처럼 빨리 갔다. 세상의 먼지에 젊음의 푸름이 조금씩 바래지더니 귀밑머리에는 어느새 흰 눈이 내렸다. 거침없는 질주 대신 앞 뒤 재는 작은 걸음이 늘었고, 이제 새로운 발걸음은 두렵고 조심스러울 때도 있다. 그 사이 아이가 크고 사는 집이 넓어졌지만 대신 주름이 늘고 어깨가 쳐졌다. 눈치 보지 않는 촌철살인의 언어로 살고 싶었는데, 요즘은 손해를 피하기 위한 변명과 취중의 푸념이 늘은 것 같다. 젊은 날의 짱짱했던 내 용기와 배짱은 어디로 간 걸까. 어느새 난 청춘을 지나 황혼에 가까워지고 있다. 
생자필멸. 누구나 청춘을 지나 황혼을 맞고 마침내는 흙으로 돌아기기 마련이다. 젊음의 뜨거운 혈기가 순해지고 온유한 너그러움을 가지게 되는 게 인생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나간 청춘을 아쉬워 할 일 만은 아니다. 자신의 이름과 얼굴에 책임을 질 나이. 난 인생의 여정에 그즈음을 지나고 있다. 

십자가의 길 14처를 지날 때면 “내 신앙은 지금 몇 처를 지나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상의 나이는 중년이지만 솔직히 신앙의 나이는 이제 막 사춘기를 지난 것 같다. 하느님께 반항하고 일탈도 감행하다 이제야 믿음의 틀이 생기고 주님을 떠나 살 수 없음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옳거니! 신앙의 사춘기를 지났다면 내 신앙은 지금부터가 ‘청춘’이다. 세상일에 주눅 들지 않고 싱그럽고 열렬한 사랑의 불꽃을 피울 믿음의 청춘. 그리고 이 정도는 안다. 세상의 청춘은 열정과 패기, 도전이 아름답지만 신앙의 청춘은 겸손과 너그러움, 용서와 절제가 미덕임을. 또, 세상의 욕심을 버려야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음을. 그리하여 마침내 내 몸과 마음을 오롯이 하느님께 바칠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다. 하느님의 기쁜 사랑을 확인하며 오늘은 이렇게 외치고 싶다. “내 청춘에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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