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이 되어준다는 것

가톨릭부산 2015.11.04 10:33 조회 수 : 20

호수 2111호 2011.06.26 
글쓴이 김양희 레지나 

배경이 되어준다는 것 

김양희 레지나

사진 한 장을 바라본다. 넓은 바다와 반쯤은 산이 가로놓인 자연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다. 문학 기행에서 웃고 선 문우들의 미소에서 그날의 서정이 꿈길인양 아득해진다. 소리도 마음도 담기지 않은 추억의 순간은 시간 속에 머물러 있지만 출렁이는 바다가 없다면 그냥 한 장의 인물 사진일 뿐이다. 사진이 돋보이는 것은 멋진 해변이 있기 때문이다.

낯선 곳을 지나치다 문득 한 장의 사진이 생각날 때는 좋은 풍경을 만났을 때다. 형태가 없는 바람이나 공기보다도 아름다운 풍치는 기억 속에서 남아 생의 한 부분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사진의 본질은 기록이나 보전의 의미도 있지만, 한 장의 사진을 살리는 것은 작가의 감각과 이미지에다 어떤 배경을 택하느냐에 있을 것이다.

깊은 산속을 걷고 있을 때였다. 구름은 아득히 떠가고 사방 산은 텅 비어 있었다. 문득 돌아서서 줄지어 선 편백나무들을 바라보니 나 또한 산중의 그림이 되고 있었다. 사람을 배경으로 한 나무 사진이었다. 자연은 인간에게, 인간은 자연에게 공존하는 하나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산이나 나무보다도, 지구를 받치고 있는 땅의 저력에 대해선 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번호표를 쥐고 순서를 기다리던 병원 대기실에서였다. 무료하던 시선이 땅바닥에서 머물렀다. 거기 무수한 사람들의 발자국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각의 타일바닥은 묵묵히 엎드린 채 노소와 미추를 가리지 않고, 그들의 숱한 애환을 수용하는 받침돌이 돼주었다. 순간 땅의 의미 이전에 발 딛고 선 바닥이란 배경에 대한 경외심이 떠올랐다. 

나는 누군가에게 땅처럼 든든한 배경이 돼준 적이 있었던가. 꽃이나 향기이고자 번번이 중심에만 서 있지는 않았는지 병원 복도의 타일바닥이 내게 묻고 있었다. 

돌아보면 모두가 내 삶의 보호막과 울타리가 돼준 이들이었다. 부모가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음이요, 한 인격체의 완성을 위해선 스승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신앙 안에서 영적인 도움을 얻는 사제의 역할과, 넘어지려 할 때마다 손잡고 일으켜준 이웃들은 또 얼마나 든든한 힘이었던가.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있다.’(요한 14, 17)는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부족한 우리의 신실한 보호막이요, 배경이 되어주실 것이다.

호수 제목 글쓴이
2876호 2025. 6. 29  주님 사랑 글 잔치 김임순 
2875호 2025. 6. 22  “당신은 내 빵의 밀알입니다.” 강은희 헬레나 
2874호 2025. 6. 15  할머니를 기다리던 어린아이처럼 박선정 헬레나 
2873호 2025. 6. 8  직반인의 삶 류영수 요셉 
2872호 2025. 6. 1.  P하지 말고, 죄다 R리자 원성현 스테파노 
2871호 2025. 5. 25.  함께하는 기쁨 이원용 신부 
2870호 2025. 5. 18.  사람이 왔다. 김도아 프란치스카 
2869호 2025. 5. 11.  성소의 완성 손한경 소벽 수녀 
2868호 2025. 5. 4.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하십시오. 김지혜 빈첸시아 
2865호 2025. 4. 13.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안덕자 베네딕다 
2864호 2025. 4. 6.  최고의 유산 양소영 마리아 
2863호 2025. 3. 30.  무리요의 붓끝에서 피어나는 자비의 노래 박시현 가브리엘라 
2862호 2025. 3. 23.  현세의 복음적 삶, 내세의 영원한 삶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2861호 2025. 3. 16.  ‘생태적 삶의 양식’으로 돌아가는 ‘희망의 순례자’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2860호 2025. 3. 9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5년 사순 시기 담화 프란치스코 교황 
2859호 2025. 3. 2  ‘나’ & ‘우리 함께 together’ 김민순 마리안나 
2858호 2025. 2. 23.  예수님 깨우기 탁은수 베드로 
2857호 2025. 2. 16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최경련 소화데레사 
2856호 2025. 2. 9.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안경숙 마리엠마 수녀 
2855호 2025. 2. 2  2025년 축성 생활의 날 담화 유덕현 야고보 아빠스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