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이명순 마리아 막달레나 / 전 노동사목 실무자
리추얼(ritual)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항상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과 같은 일’이라는 뜻인데 기준점이 되는 시간대를 정해 놓고 의식적으로 그 행위를 함으로써, 스스로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행위에 정서적으로 반응하고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 패턴입니다. 예를 들어 아침을 커피와 함께 좋은 음악으로 시작한다는 것들입니다. 이때 아무 인식 없이 반복되는 행동이면 습관이요, 뿌듯한 좋은 느낌을 갖게 되면 리추얼입니다.
리추얼이 많을수록 삶이 풍요로워진다기에 저도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새로 생긴 몇 가지 리추얼이 떠오릅니다. 그 중 하나가 주일마다 본당 미사에 참례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노동사목 활동을 접고 나니 가장 바빴던 주일이 한가해졌습니다. 주일이 한가해지고, 본당에 가는 것이 아직도 어색합니다. 8년 동안 이주노동자들과 영어 미사에 참례했던 제가 한국어 미사에 참례하려고 본당에 나갑니다. 노동사목이라는 공동체의 중심에서 늘 누군가를 맞이하던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본당 구조도 잘 몰라 쭈뼛거리며 자리를 찾는 주변인이 되었습니다. 어색하지만 변두리에 서서 세상을 이해하는 좋은 체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말로 진행되는 미사는 내용이 흡수되듯이 들어오네요. 편안하면서도 설레입니다. 당연한 것들이 새롭게 다가오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이주민들이 부산·경남 곳곳에서 가톨릭센터까지 자기 나라 미사에 참례하러 오는구나. 역시 기도는 자기 나라 말로 해야 해.’ 여러 생각과 감동으로 미사 전례를 따라가는 중에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는 경문을 듣고서는 마음이 멎습니다.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결국 나를 기억하고 나처럼 살아가라는 것이 예수님이 하고 싶은 말씀이었나…. 왠지 예수님의 안타까움마저 전달되는 것 같아 제 마음이 쓰려옵니다. 미사를 통해 나날이 다짐을 하고 또 그대로 살았는지 반성하는 과정이 참 좋습니다.
아직도 다급히 오셔서 상담 실장에게 괴로움을 토로하시던 노동자들의 고통이 짐작됩니다만, 본당 미사에 참례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저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삶으로 들어왔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건을 마주할 텐데, 노동사목에서 만났던 인생살이를 스승삼아 새로이 살아보려 합니다. 예수께서 당부하셨던 말씀 뿐 아니라 제대로 살고자 스스로 했던 약속과 다짐들을 다시 묵상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