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도 팔자

가톨릭부산 2015.11.04 10:31 조회 수 : 59

호수 2108호 2011.06.05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걱정도 팔자

탁은수 베드로

새파란 바지와 샛노란 바지를 한 벌씩 샀다. 몸에 꼭 끼이는 셔츠도 사서 같이 입고 다닌다. 튀는 바지에다 배 둘레의 살이 셔츠 밖으로 드러나 내가 봐도 좀 민망하다. 친구들도 “나이 들어가며 무슨 주책이냐”는 반응이다. 그 동안 내 옷차림은 평일에는 정장, 휴일에는 어두운 색이 대부분이었다. 점잖 빼고 체면 차리느라 무난한 옷만 입었다. 그런데 문득 “내 젊음이 얼마나 남았다고 입고 싶은 옷도 마음대로 못 입을까” 싶었다. 남이야 뭐라던 밝은 색의 튀는 옷 입었더니 자유롭고 젊어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몇 년 전에 개봉한 ‘버킷 리스트’란 영화가 있다. 재벌 사업가가 죽음을 선고 받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하나씩 실천한다는 스토리다. 주인공은 그때서야 주변과 화해하고 인생의 가치를 발견해 간다. 영화에 이런 대사가 있다. ‘당신은 인생의 기쁨을 찾았는가?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었는가?’ 고대인들은 죽어서 하늘로 간 영혼이 신에게 이 두 가지 질문을 받는다고 믿었다. 난 죽기 전에 이 질문의 답을 찾고 싶다. 

한국인의 55%는 ‘은퇴’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통계가 있다. 반면 인도나 말레이시아 등에서는 ‘자유’를 연상했다고 한다. 이전보다 먹고 살기가 나아졌지만 걱정이 더 커졌고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보다 걱정이 많은 걸 보면 행복은 꼭 경제 사정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닌가보다. 천석꾼은 천 가지,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 있다고 했다. 이 말 대로라면 가진 것을 줄여야 걱정도 준다. 또 다른 옛말에 “걱정도 팔자”라고 했는데 걱정을 줄이면 팔자가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걱정의 90% 이상은 안해도 될 걱정이란다. 지나가 버린 일에 대한 걱정,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이다. 각박한 세상에 믿을 건 자신밖에 없다는 인식이 걱정을 더 크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믿을 건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쓸데없는 걱정대신 오늘 일에 최선을 다하면 내일은 하느님이 지켜주실 것이다. 난 최근 조그만 텃밭을 만들고 기뻐하는 보좌신부님, 아이들과 천진난만하게 어울리는 수녀님의 웃음에서, 세상 부자는 가질 수 없는 기쁨을 엿보았다. 나 같은 사람도 세상 걱정 조금만 멀리하면 포근한 봄바람, 푸른 물이 돋은 나뭇잎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세상 걱정보다 든든한 하느님 믿고 기쁜 마음으로, 이왕이면 젊고 열린 마음으로 살고 싶다. (“그런데 성당에 노란바지 입고 가면 어른들이 나무라실까?” 걱정도 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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