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사건으로 만나자!
김종일 요한 / 노동사목 사무국장
해마다 사순 시기가 오면 전국의 노동사목 실무자들이 모여 3일간 사순 피정을 합니다. 피정 일정은 단순합니다. 아침, 저녁 기도와 십자가의 길 그리고 미사를 함께 참례 하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자유롭습니다. 단 침묵은 지켜야 하지요. 낮잠을 자거나 산책을 해도 좋고, 경당에 들어가 묵상을 해도 좋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 한해 중 가장 기다려지는 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으레 그러려니 했던 기대감과 설렘은 피정 시간표를 받아드는 순간 깨지고 말았습니다. 욕먹을 각오하고 사순 피정 일정을 빡빡하게 짰다는 수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몇 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 피정에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태하게 젖어들면서, 새로운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피정 시작에 마련된 ‘마르코 복음 입문 강의’는 깨달음뿐만 아니라 피정 내내 귀한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의 공생활을 충실하게 전달한 ‘사건의 복음서’로써 우리가 예수님을 사건으로 체험할 때 비로소 참된 회개를 할 수 있고, 예수님처럼 참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강의의 요지였습니다. ‘예수님을 사건으로 만나라!’는 신부님의 말씀이 저에게 피정의 화두로 작용한 셈이였습니다. 예수님은 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과의 삶에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들을 위해 당신의 고귀한 목숨까지 바치셨으니 이들이야말로 사건의 중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노동사목의 성격상 저는 여느 사람에 비해 노동자와 만나 이야기하고 그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현장에 갈 기회가 많은 편입니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제가 사건의 현장에 온전히 있던 것은 아닙니다. 관성에 젖어 몸은 있으되 마음이 떠나 있을 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건을 만난다는 것은 분명 힘든 일입니다. 나의 일도 아니면서, 내가 외면할 수도 있는 곳인데도 가야만 하는 그곳은 매번 새로운 사랑과 용기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힘겹게 사건 현장으로 갔다하더라도 떠나올 때는 늘 기뻤으며, 그들과 직접 만나는 체험 없이 이 일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마르코 복음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이 들었던 말씀을 좋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에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거기에서 그분을 뵙게 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사셨던 그곳 갈릴래아. 이번 부활, 가난한 이웃들이 사는 사건의 현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