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098호 2011.03.27 
글쓴이 김기영 신부 

“주님, 이들이 하나 되게 해 주십시오”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지난 3월 11일(금), 미야기 현(宮城縣)을 비롯한 일본 동북 지방에 엄청난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났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자연의 가공할 힘 앞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쓸려나갔다. 모두 숨을 죽이고 참사 현장을 생중계로 지켜보았고, 서로서로 가족의 안부를 확인했다. 나 역시 도쿄에 사는 신자들 가족이 무사한지 확인을 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매일 급격히 늘어나는 희생자들 소식과 흩어진 가족들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추위와 배고픔, 설상가상으로 후쿠시마(福島)원전 붕괴로 인한 방사능 오염의 두려움 속에서 구조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는 피난민들을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저께 지구 사제회의 중에 이번 지진으로 센다이(仙台) 교구에 몇몇 성당이 파괴되었고, 거기서 활동하시던 퀘벡 외방수도회 소속 앙드레 라샤펠 신부님의 선종 소식도 들었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세상 속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왔던 교회가 그 고통도 고스란히 함께하고 있었다.

지난 달, 마산 교구에서 열렸던 제17회 한·일 청년 교류 모임에서 느낀 바가 있다. 대회 주제는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 21)”라는 예수님의 기도였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양국 젊은이들이 여러 프로그램을 함께 했지만, 정작 이 기도는 우리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이루어졌다. 이번 대회 때 유난히 많은 환자가 속출했다. 이른바 유행성 급성 장염이었다. 모두 10명 남짓한 환자가 나왔다. 큰일이었다. 내일이면 대회가 끝나고, 당장 일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되는데, 한 친구는 그날 밤까지 열이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 친구 이마의 물수건을 바꿔주면서 깨달았다. ‘왜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불러 모으시는가?’ 그것은 서로의 아픈 곳이 어딘지를 정확히 알고, 또 아파하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치유하신다. 우리의 하나 된 마음을 보시고, 불신이라는 서로의 상처에 평화라는 치유를 하시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기적같이 그 친구는 열이 떨어졌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지진 이후, 많은 도움과 응원, 기도가 일본으로 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일제 시대 종군 위안부였던 할머니들마저 그들의 희생 앞에 눈물을 흘리신다. 양국 사이에 역사적, 민족적 앙금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인류애라는 더 큰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처럼 누군가 사랑 덩어리이신 주님을 먼저 끌어안을 때, 한·일간의 뿌리 깊은 상처는 치유될 것이다. 또한 재난의 십자가를 함께 지는 사순을 살아갈 때, 신뢰와 평화라는 이름으로 부활하리라 믿는다.

호수 제목 글쓴이
2897호 2025. 11. 9  2025년 부산교구 평신도의 날 행사에 초대합니다. 추승학 베드로 
2896호 2025. 11. 2  나를 돌아보게 한 눈빛 김경란 안나 
2895호 2025. 10. 26  삶의 전환점에서 소중한 만남 김지수 프리실라 
2893호 2025. 10. 12  우리는 선교사입니다. 정성호 신부 
2892호 2025. 10. 6  생손앓이 박선정 헬레나 
2891호 2025. 10. 5  시련의 터널에서 희망으로! 차재연 마리아 
2890호 2025. 9. 28  사랑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김동섭 바오로 
2889호 2025. 9. 21  착한 이의 불행, 신앙의 대답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2888호 2025. 9. 14  순교자의 십자가 우세민 윤일요한 
2887호 2025. 9. 7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권오성 아우구스티노 
2886호 2025. 8. 31  희년과 축성 생활의 해 김길자 베네딕다 수녀 
2885호 2025. 8. 24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탁은수 베드로 
2884호 2025. 8. 17  ‘옛날 옛적에’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2883호 2025. 8. 15  허리띠로 전하는 사랑의 증표 박시현 가브리엘라 
2882호 2025. 8. 10  넘어진 자리에서 시작된 기도 조규옥 데레사 
2881호 2025. 8. 3  십자가 조정현 글리체리아 
2880호 2025. 7. 27  나도 그들처럼 그렇게 걸으리라. 도명수 안젤라 
2879호 2025. 7. 20  “농민은 지구를 지키는 파수꾼이자 하느님의 정원사입니다.” 서현진 신부 
2878호 2025. 7. 13  노년기의 은총 윤경일 아오스딩 
2877호 2025. 7. 6  그대들은 내 미래요, 내 희망입니다. 이나영 베네딕다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