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구경꾼

가톨릭부산 2015.11.03 06:59 조회 수 : 14

호수 2096호 2011.03.13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부활 구경꾼

탁은수 베드로 

어느새 배 둘레에 살이 푸짐해졌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살고 싶은데 제 몸 하나 뜻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 남아도는 영양분이 몸속에 쌓여 건강을 해치는데도 절제는 식욕을 이기지 못한다. 회사 책상에 가득 쌓인 서류 더미들도 내 뱃살을 닮았다. 일 년에 한 번도 꺼내보지 않는 서류들이 책상 한쪽을 채우고 있다. 언제 필요할지 모른다는 미련 때문에 제때 처분을 못한 채 덩치만 커져간다. 마음속에는 버리지 못한 것이 훨씬 많다. 때늦은 후회,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 불필요한 걱정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어 기쁨과 자유, 평화가 살 수 있는 자리가 좁다. 

욕심을 버려야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는 이야기야 몇백 번은 더 들었다. 하지만 일상의 욕심을 털어내기가 쉽지 만은 않다. 세상 사람들은 넓은 집에 큰 차를 타야 출세했다 하고 돈 벌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현명하다고 한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희생과 용서는 훨씬 더 어렵다. 제 한 몸, 내 가족 지키기도 버거운데 남을 위해 내 것을 내놓으라니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자기 잘못도 인정하기 힘든데 내게 상처 입힌 사람을 용서하라는 건 예수님이나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며 살기도 했다. 이렇게 신앙 따로, 생활 따로 사는 시간이 늘면서 어느새 난 예수님을 따르기보다 군중들 속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구경꾼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옛글에 “달은 천 번을 기울어도 다시 차고, 버들은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는 구절이 있다. 자연은 스스로의 부활을 이렇게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부활은 예수님만 하신 것이 아니다. 아프고 힘들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깨고 거듭난다면 누구나 부활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우리도 나눠 져야하듯 부활도 예수님만의 부활에 그쳐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로 이어져야 구원 사업의 의미가 있다. 

사순은 부활을 위한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시기다. 수난에 동참해야 부활에도 동참할 수 있다. 하지만 뱃살 하나 관리하지 못하는 나 같은 범부들에겐 그동안 자리 잡은 욕심을 씻어내고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수난이 단순한 고행과는 다름을 알기에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의 수난을 따라가려 한다. 예수님과 함께 영광스런 부활의 신비를 체험하느냐, 아니면 예수님 주변을 서성이는 부활의 구경꾼으로 남느냐의 갈림은 사순시기의 수난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호수 제목 글쓴이
2897호 2025. 11. 9  2025년 부산교구 평신도의 날 행사에 초대합니다. 추승학 베드로 
2896호 2025. 11. 2  나를 돌아보게 한 눈빛 김경란 안나 
2895호 2025. 10. 26  삶의 전환점에서 소중한 만남 김지수 프리실라 
2893호 2025. 10. 12  우리는 선교사입니다. 정성호 신부 
2892호 2025. 10. 6  생손앓이 박선정 헬레나 
2891호 2025. 10. 5  시련의 터널에서 희망으로! 차재연 마리아 
2890호 2025. 9. 28  사랑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김동섭 바오로 
2889호 2025. 9. 21  착한 이의 불행, 신앙의 대답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2888호 2025. 9. 14  순교자의 십자가 우세민 윤일요한 
2887호 2025. 9. 7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권오성 아우구스티노 
2886호 2025. 8. 31  희년과 축성 생활의 해 김길자 베네딕다 수녀 
2885호 2025. 8. 24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탁은수 베드로 
2884호 2025. 8. 17  ‘옛날 옛적에’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2883호 2025. 8. 15  허리띠로 전하는 사랑의 증표 박시현 가브리엘라 
2882호 2025. 8. 10  넘어진 자리에서 시작된 기도 조규옥 데레사 
2881호 2025. 8. 3  십자가 조정현 글리체리아 
2880호 2025. 7. 27  나도 그들처럼 그렇게 걸으리라. 도명수 안젤라 
2879호 2025. 7. 20  “농민은 지구를 지키는 파수꾼이자 하느님의 정원사입니다.” 서현진 신부 
2878호 2025. 7. 13  노년기의 은총 윤경일 아오스딩 
2877호 2025. 7. 6  그대들은 내 미래요, 내 희망입니다. 이나영 베네딕다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