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의 프란치스코

가톨릭부산 2015.11.03 06:53 조회 수 : 34

호수 2089호 2011.01.30 
글쓴이 김기영 신부 

휠체어의 프란치스코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신묘년 새해가 밝았다. 더불어 모든 가족, 공동체에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빈다. 

지난 성탄, 우리 성당에는 크나큰 축복이 있었다. 물론 본당 3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의미도 있었지만, 교회(敎會)가 단순히 건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이들의 모임’이라는 말처럼, 공동체에 새로운 식구가 태어난 것이다. 어른 5명, 어린이 4명의 영세식이 있었고, 보너스로 일곱 꼬맹이들의 첫영성체도 함께 있었다. 은총의 “대박”이 터진 셈이다. 지금도 주님의 사람 낚으시는 재주가 놀랍기만 하다.

특히, 예비자 교리를 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분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나이는 60대 후반, 오르간 반주를 하시는 자매님의 남편인데, 10년 전부터 반신불수로 휠체어를 타고 계신다. 재작년, 성탄 때 처음으로 자매님을 따라 미사에 참석을 했는데, 미사가 끝나고 축하 파티를 하는 동안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고 현관 쪽에 혼자 있는 것을 보았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 연락이 왔다. 교리 공부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아! 그때 비로소 ‘예수님이랑 이야기하고 있던 중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불편한 관계로 매주 성당에 오기가 쉽지 않아서 방문 교리를 하기로 했다. 교리 첫 날 당연히, “그 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계셨어요?”라고 물을 수 밖에 없었다. 대답인즉, 천국 좋은 것은 알겠는데, 그게 어디든, 죽어서도 지금 마누라랑 함께 살고 싶단다. 맞는 말이지만, 한편으로 그 대답이 너무 엉뚱하기도 해서 너털 웃고 말았다. 

사실 그랬다. 몇 년 전만 해도 작은 사업체를 하면서 혈기왕성하게 활동하던 분이 어느 날 갑자기 몸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휠체어 신세를 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왜 하필 나한테...”라는 부정적인 생각부터 지금의 휠체어를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기까지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자매님의 기도와 인내, 정성과 사랑이 함께 했던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남편의 영세를 통해 자매님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영세 소감을 물었다. “혹시 내가 건강했더라면, 지금 마누라가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 존재인지 몰랐을 겁니다. 하지만, 이 병 때문에 죽어서도 이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례명은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평생을 자기 비움과 복음적 가난을 통해 주님을 사랑하였던 오상(五傷)의 수도자! 주님께서는 거룩한 상처를 통해 성인을 당신 영광에 초대하신 것처럼, 이 형제님에게도 휠체어의 의미를 통해 부활의 영광에 함께 하도록 불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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