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반성문
흥청망청. 한해를 보내는 도시의 거리는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가득했습니다. 회식이니 송년회니 구실로 이 밥집, 저 술집을 다니면서 몸과 마음이 조금씩 무너져 갔습니다. 몸을 가누지도 못할 술을 마시고 쓰린 속과 숙취의 두통에 시달리는 날이 계속 됐습니다. “사회생활 하는 사람이 연말인데 어쩔 수 없잖아.” 스스로 변명을 해보기도 했지만 술에 취해 흐릿한 눈과 어지러운 머리 때문에 대림을 맞을 때의 각오가 조금씩 멀어져갔습니다. 회개와 자선, 기다림의 신비 대신 세상의 유혹이 자리를 넓혀갔습니다.
아기 예수는 냄새나는 말구유,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지만 난 늘 높은 자리를 탐냈습니다. 모임에서도 상석에 앉으려했고 일상에서도 주목받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려 했습니다. 나보다 잘 난 사람이 이야기하면 들어주기보다 반박하기에 바빴습니다. 뺏기는 건 무능력이고 밀리면 지는 것처럼 신경을 곤두세워 왔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경쟁의 원동력인 것처럼 여기면서 겸손의 자리는 작아져만 갔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을 심으시고 양보를 가르쳤는데 난 왜 이렇게 쉽게 분노하고 미움에 빠른지요. 각박한 세상 핑계 삼아 하느님을 밀어내고 세상의 일에 몸과 마음을 내준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동족끼리 포탄을 쏘고 누가 더 큰 타격을 입혔는지를 따졌습니다. 흙탕물을 마시며 질병에 쓰러져가는 아프리카 소식을 들으면서도 내 몸만 깨끗하면 된다는 듯 지내오고 있습니다. 돈의 탐욕은 국경을 넘어 지구의 절반을 도박판으로 만들었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내쫓기고 피부색이 다른 노동자들은 단속을 피하다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한쪽에선 음식쓰레기와 비만을 걱정하고 한쪽에선 굶주림과 기아에 시달리는 부조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세상을 비추러 온 하느님을 무슨 면목으로 뵐 수 있을까요?
기쁜 성탄. 교회는 아기예수의 탄생을 경배하고 모두들 기쁨과 축하의 인사를 나눕니다. 하지만 아기 예수께 드릴 선물이 없는 나는 빈손으로 생일 집을 찾은 것처럼 마음이 무겁습니다. 쓸데없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차고 넘치는 기쁨을 만날 수 있을 텐데 내 노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고백성사는 봤지만 그래도 죄를 다 씻지 못한 부끄러운 마음으로 주님 곁을 맴돌고 있는 데 “괜찮다, 베드로. 다 괜찮다“하시는 듯 해맑게 웃고 계신 아기 예수님.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웃고 계신 그 모습에 못난 내 마음이 왜 이리도 먹먹해지는지요.
estak@busanmbc.co.kr 부산MBC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