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교회 안에 흐르는 피

가톨릭부산 2015.11.02 16:14 조회 수 : 40

호수 2063호 2010.08.22 
글쓴이 김기영 신부 

기도는 교회 안에 흐르는 피

지난 달, 홋카이도(北海道)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연피정을 하고 왔다. 한국의 각 교구에서 파견된 선교사제들과 함께 한 피정이었다. 서울 1명, 의정부 3명, 제주 2명, 부산 2명 모두 8명의 사제들이 함께 했다. 피정 지도로는 이한택(요셉) 주교님께서 이 먼 곳까지 한 걸음에 달려와 주셨다. 

방식은 매일 던져지는 한 편의 성경 구절을 묵상하고 곱씹으면서 자신이 파견된 곳의 상황에 맞추어 느낀 바를 나누는 식이었다. 말하자면, 그간 선교사로서의 마음가짐과 그 활동에 있어서 막힌 배수로는 없는지 살펴보고, 또 물이 흘러야 될 곳에는 상담과 함께 물꼬를 트여주는 식이었다. 이 피정 안에서 참으로 많은 은혜를 얻었다. 먼저,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를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느낄 수 있었고, 두 번째는 든든한 동료들을 보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피정장소가 다름 아닌 트라피스트 였다는 것이다. 

기도와 활동! 마리아와 마르타! 이것은 신앙과 선교에 있어서 수레의 두 바퀴와도 같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서에 있어서 왜 기도가 먼저여야만 하는지 깨닫게 해 주었다. 어느 신부님의 강론 중에, 「기도 없는 활동은 자기 교만으로 흐르기 싶고 활동 없는 기도는 공염불이 되기 싶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피정 장소가 봉쇄 수도원이었다는 점은 늘 현장에서 움직이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밤 8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교회가 마땅히 바쳐야 할 시간경을 모두 바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분들의 기도에 힘입고 있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먼 길을 이동할 때, 사람들의 시간에 내 시간을 맞추면서 선교를 하다 보면 제 때에 바쳐야 할 기도를 놓칠 때가 많다. 하지만, 서품 때도 약속했듯이 하느님 앞에서, 공동체 앞에서 내가 바쳐야 할 기도를 이름 없는 수도자들이 세상 어느 한 곳에서 묵묵히 바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하나의 몸뚱아리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해 주었다. 

기도는 교회라는 몸 안에 흐르는 피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 몸의 어딘가에 이상이 있을 때 우선은 아픈 곳의 혈액순환이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기도하는 소리가 멎을 때 교회는 늘 기도하시는 성자의 지체로 존재하기 힘들다. 참으로 고마운 것은, 이 기도가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황에서가 아니라 힘들고, 어렵고,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 새어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의 은총은 늘 시련의 얼굴을 하고 오는지도 모르겠다.

호수 제목 글쓴이
2876호 2025. 6. 29  주님 사랑 글 잔치 김임순 
2875호 2025. 6. 22  “당신은 내 빵의 밀알입니다.” 강은희 헬레나 
2874호 2025. 6. 15  할머니를 기다리던 어린아이처럼 박선정 헬레나 
2873호 2025. 6. 8  직반인의 삶 류영수 요셉 
2872호 2025. 6. 1.  P하지 말고, 죄다 R리자 원성현 스테파노 
2871호 2025. 5. 25.  함께하는 기쁨 이원용 신부 
2870호 2025. 5. 18.  사람이 왔다. 김도아 프란치스카 
2869호 2025. 5. 11.  성소의 완성 손한경 소벽 수녀 
2868호 2025. 5. 4.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하십시오. 김지혜 빈첸시아 
2865호 2025. 4. 13.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안덕자 베네딕다 
2864호 2025. 4. 6.  최고의 유산 양소영 마리아 
2863호 2025. 3. 30.  무리요의 붓끝에서 피어나는 자비의 노래 박시현 가브리엘라 
2862호 2025. 3. 23.  현세의 복음적 삶, 내세의 영원한 삶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2861호 2025. 3. 16.  ‘생태적 삶의 양식’으로 돌아가는 ‘희망의 순례자’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2860호 2025. 3. 9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5년 사순 시기 담화 프란치스코 교황 
2859호 2025. 3. 2  ‘나’ & ‘우리 함께 together’ 김민순 마리안나 
2858호 2025. 2. 23.  예수님 깨우기 탁은수 베드로 
2857호 2025. 2. 16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최경련 소화데레사 
2856호 2025. 2. 9.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안경숙 마리엠마 수녀 
2855호 2025. 2. 2  2025년 축성 생활의 날 담화 유덕현 야고보 아빠스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