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해를 뒤로 하며

가톨릭부산 2015.11.02 16:08 조회 수 : 68

호수 2059호 2010.07.25 
글쓴이 김기영 신부 

사제의 해를 뒤로 하며

지난 6월 예수성심 대축일, 오사카 타마츠쿠리(玉造) 주교좌 성당에서 사제의 해 폐막식 행사를 가졌다. 관구 소속의 5개 교구, 오사카, 쿄토, 나고야, 히로시마, 타카마츠 교구의 사제 백 이십 여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새 신부부터 헌 신부, 하얀 신부부터 까만 신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제들의 모습과 한 해, 또 한 해 그들이 힘겹게 살아왔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결국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 것은 한 가지임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다. 마치 어미닭이 한 날개 밑으로 병아리들을 모으듯이, 하느님께서도 이들을 통하여 당신 품 안으로 우리를 불러 모으신다는 생각에 왠지 마음 든든해지는 하루였다. 

한편, 「나의 사제 인생」이라는 발표시간, 각자 삶의 자리에서 정말 치열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고민하며 살고 있는 선배, 동료 사제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왠지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불쾌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솔직히 지난 1년간 사제의 해를 지내면서, ‘비안네 성인의 모범을 하나라도 몸에 익히고자 얼마나 노력했고, 교황님의 권고대로 의무가 아닌 봉헌의 삶을 살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냥 사제라는 이유만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어도 되는 것인가?’등 반성의 소리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런 생각에 젖어 있던 나에게 정말 은총의 시간이 주어졌다. 미사 중 고백성사였다. 보통은 미사 전에 고백성사를 하지만, 이 날은 달랐다. 말씀의 전례를 마치고, 사제가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베푸는 예식이 이어졌던 것이다. 드넓은 대성전의 제단 뒤, 오르간 뒤, 성가대 석, 성전 기둥 옆 등 모두 10개소에 간이 의자가 2개씩 설치되고, 사제는 장백의와 영대를 걸친 그대로, 그야말로 사제 본연의 모습으로 고해성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장관이었다. 

고해를 하는 사제도, 고해를 듣는 사제도, 정녕 한 길을 걸어가는 동료로서 서로를 용서하는 진풍경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미사에 참례하던 신자들 역시 평소에는 보기 힘든 사제들의 고백을 이렇게 보고 있자니, “오너라, 나와 화해하자!”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은 듯했다. 자연스럽게 신자들의 고해가 이어지고, 교회의 보물인 성사를 통해서 우리를 성심 안에 한데 모으시는 그분의 섭리 앞에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렇듯 은총의 체험은 우리의 신앙을 견고케 한다. 나아가 이 신앙의 체험은 교회 전체를 더욱 싱싱하고 살아있게 만든다. 심포지엄 중에 사제의 노령화 및 신자 수의 감소 등 일본 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할 말이 있다. ‘정녕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있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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