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암

가톨릭부산 2015.11.02 15:55 조회 수 : 22

호수 2050호 2010.05.23 
글쓴이 이명순 

미리암

이명순(마리아 막달레나) 노동사목 상담실장

5월 8일 밤 11시. 미리암 씨는 드디어 고향 필리핀 땅에 도착했습니다. 얼마나 험난한 여정이었는지요. 뜨거운 세부 막탄 공항에 도착할 무렵 누워있는 미리암 씨에게 이제 다 왔으니 걱정 말고 쉬시라고 속삭였을 때 그의 눈은 안도하는 빛으로 바뀌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맘 졸이는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일이 쉽게 수습 안 돼 한국에서 무사귀환소식만을 기다리고 있을 신부님 걱정이 됩니다. 마침내 대기하고 있던 앰뷸런스와 가족에게 환자를 인계하고 나서야 기나긴 임무는 끝이 났습니다.

많은 이가 성탄절, 연말연시에 삶의 짐을 잠깐 내리고 휴식을 취할 때, 미리암 씨는 한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았고 불행하게도 심장마비가 왔습니다. 대학병원으로 긴급이송이 되었지만 심장마비로 온 저산소성뇌손상 때문에 쇼크에 빠졌습니다. 뇌사에 가까운 상태니 희망은 안 갖는 게 좋겠다는 말을 수없이 들으면서도 어떻게, 얼마만큼 도울지 고민하며 신부님, 실무자 모두 부산, 울산, 양산을 쫓아다녔습니다. 대학병원, 요양병원, 재활병원을 전전한 끝에 마침내 가족이 있는 필리핀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소견을 받았습니다. 세심한 보살핌 덕에, 꼼짝없이 누워 눈조차 깜빡이지 않던 그는 이제 눈동자도 움직이고 통증을 느끼면 인상도 씁니다. 처음 봤을 때보다 정말 많이 좋아진 겁니다. 하지만, 미래를 꿈꾸며 한국으로 떠났던 딸이 의식도 없이 구급차에 실려 오는 모습을 볼 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지겠지요.

여러 곳에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 이루 헤아리기 힘든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무적으로만 할 수 있는 일도 온 마음을 내어 최선을 다해 주셨습니다. 직접 알지 못해도 걱정하며 눈물지었습니다. 몇 개월을 이 일과 관계된 분들을 만나면서 미리암씨에게 필요한 일을 해드리는 동안 그분을 통해 우리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연민의 은총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런 선물을 준 미리암 씨가 이제 가족 안에서 평화롭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한 오늘 아침, 남편 제시 씨가 필리핀에서 전화를 합니다. 부인이 조금 전에 영원한 안식을 갖게 되었다고 전하는군요. 가족과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고 저세상으로 가신 겁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리 가신 것 같아 아침 내내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짧은 생을 마감하고 이 세상을 떠난 그분께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이제는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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