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046호 2010.04.25 
글쓴이 김종일 

교회에서 그런 일을 왜 합니까!

김종일 노동사목 사무국장

노동사목의 주 업무는 임금이나 퇴직금체불, 산재 등과 같이 노동문제가 생겼을 때 상담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는 한국말이 서툴기에 상담을 받으면 그 문제가 완전히 해결이 될 때까지 노동부는 물론 법원까지 직접 뛰어다녀야 한다. 한국은 많은 이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다문화사회가 된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이주민들 특히 한국경제의 디딤돌 역할을 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하다. 보기로, 이주노동자에게 중요한 출입국사무소나 노동부, 경찰서 등과 같은 정부기관에서 조차 외국어능력을 갖춘 담당자나 봉사자를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노동문제나 형사문제로 다툼이 생겼을 때, 문제해결의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소통이 원활한 한국인에게 유리하게 판결을 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는 우리와 같은 비공식 단체의 활동을 묵인하거나 나아가 지원까지 하는 입장이다.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막대한 돈과 인력을 들여 해야 할 일을 정부대신 시민단체가 스스로 나서서 해주니 ‘꿩 먹고 알 먹고’ 이보단 좋을 순 없다. 때때로 정부의 정책에 맞서 쓴 소리를 해대는 점만 빼곤 말이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어떨까?

내가 이 일을 하는 동안, 사장님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야, 너 한국사람 맞아?”, “거기 뭐하는 데야? 니가 뭔데 나서서 참견이야.” 온갖 막말과 욕을 수없이 들었지만, 가장 잊혀 지지 않는 말은 이렇다. “나도 천주교 신잔데 말이요, 도대체 교회에서 그런 일을 왜 합니까! 그렇게 할 일이 없어요?” 퇴직금을 주지 않는 이 분의 말에 따르면, 교회가 할 일은 세속의 번잡한 일을 떠나 기도하는 것인데, 세상일에 왜 간섭하느냐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난 다음 얼마 동안 나는 어처구니없는 헛웃음만 짓고 있었다. 천주교 신자라는 말에 잠시나마 '이 문제가 원만하게 잘 해결되겠구나.' 하고 기대한 나 자신이 멍청하게 생각될 정도였다. 

아마도 이분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처지를 외면하지 말고 도와야 한다.”는 예수님과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을, 오로지 기도를 통해서만 또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사랑실천에만 국한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싶다. 이 땅 위에 하느님 나라를 이룩해야 할 사명을 받은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가 곧 사회의 일원이기도 할진데, 신자로서 해야 할 일과 사회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을까? 그렇다면 이처럼 불의한 처지를 누가 도와야 할까? 그분에게 내가 묻고 싶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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