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매교구인가?

가톨릭부산 2015.11.02 15:43 조회 수 : 35

호수 2039호 2010.03.07 
글쓴이 김기영 신부 

왜 자매교구인가?



작년 여름, 자매교구인 필리핀 인판타 교구를 다녀왔다. 매년 히로시마 교구에서는 고등학생, 대학생들을 데리고 인판타 교구를 방문, 현지 신자들의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다양한 체험과 교류를 하고 있다. 물론 학생들은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지금의 일본에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소중한 것들을 배우고 온다. 그리고 갈 때보다 확실히 내면적으로 성숙해서 돌아온다. 그 중 '레알'이란 곳을 방문했을 때 있었던 일이다.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제네랄 나칼'에서 남쪽으로 2시간, 성당에 도착을 하니 신부님의 첫 환영사가 "여러분, 왜 이곳에 오셨습니까?"였다. 순간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족한 영어 실력이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알고보니 '레알'이란 지역이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의 점령으로 심한 피해를 입었던 곳이었고, 아직도 많은 주민들이 그때의 상처와 아픔을 그대로 안은 채 살고 있었다. 또한, 신부님의 부모님도 그 때 희생되셨다고 한다. 당연히 신부님의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참 평화를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만 합니다. 언제부터 우리의 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했는지 똑바로 보고 거기서부터 고쳐나가야 됩니다. 그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렇게 평화를 테마로 한 담화는 1시간 정도 계속되었다. 이제 우리 쪽에서 소감을 이야기할 차례가 왔다. 학생들의 얼굴을 보니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얗게 질려있었다. 물론 학교에서 태평양 전쟁에 관해서는 배웠겠지만, 그 와중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고, 그 때 피해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아니,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이다. 긴 침묵이 흐른 뒤에 한 학생이 일어나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아픔을 안 이 순간부터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나는 일본 선교를 하면서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잘 하는 편이 아니다. 무턱대고 몇 차례 논쟁을 벌인 결과가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즈음에 왜 하느님께서 우리를 3자매교구로 맺어주셨는지 거듭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서로에 대해 보다 잘 앎으로써 우리 안에 참 평화를 싹틔워주고자 하심이 아닐까? 그리고, 분명한 것은 내 형제가, 자매가 병들고, 상처를 입어서 고통스러워한다면 그 이유를 떠나서 서로 안고 보듬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 사순절을 보내면서 내가, 우리가 안아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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