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부산 2015.11.02 15:39 조회 수 : 26

호수 2034호 2010.01.31 
글쓴이 이명순 막달레나 



이명순(마리아 막달레나) 노동사목 상담실장

어느 아침, 다급한 목소리로 이주노동자가 저를 찾습니다. 눈이 많이 아파서 회사에 허락 받고 안과에 갔답니다. 회사에 돌아와 다시 일을 하려는데 과장님이 일하지 말고 필리핀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필리핀에 가라는 말에 너무 놀란 노동자한테, 회사에서 화났을 것 같은 몇 가지 이유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설명해 줍니다. 말이 잘 안되더라도 일단 회사 사람을 만나서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본인이 걱정한 것보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일하며 본국의 가족을 부양하는 노동자들한테 갑작스런 해고 통지는 청천벽력입니다. 실제로 이주노동자들은 일자리를 한 순간에 잃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어쨌든 좀 있다가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며 연락을 주네요. 문제도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만나서 얘기하다보면 실마리를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평등한 관계에서 소통이 안 되는 건 약자에게 큰 장애가 분명함을 알게 됩니다. 

요즘 의료 지원을 하고 있는 한 여성 이주노동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작년 말 출산을 하던 중 심장마비가 왔습니다. 얼마동안 뇌에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아 뇌사 상태에 이른 이 분을 돕느라 노동사목 소장 신부님을 비롯한 실무자 모두가 힘을 많이 쏟고 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아기는 인큐베이터에, 산모는 중환자실에 오래 입원을 하면서 엄청난 병원비가 나왔습니다.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병원비가 싼 곳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는 병원 측의 조언으로 지금 산모는 요양병원에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갖고 있는 남편은 매일 제대로 잠도 못자고 부인의 병원비 마련과 치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출산을 앞두고 병원을 추천해달라며 울산에서 부산가톨릭센터까지 왔는데 몇 달 지나 이렇게 만나게 되니 정말 미안하고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하는 자책을 합니다. 

첨예한 문제로 촉각을 다투는 노동사목에서 ‘참사람살이’를 배웁니다. 못 본 것을 보고 듣지 못한 것을 들을 수밖에 없으니 새로운 세상입니다. 노동사목 생활은 좋은 삶이라 오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도, 힘들 때마다 온갖 유혹에 흔들립니다. 길고 건강하게 살려는 고민을 할수록 내 활동의 뿌리와 기쁨은 예수님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살아 있어도 없는 듯,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노동자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 그들과 함께 하다보면 어느새 예수의 삶을 따르는 제자로 닮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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