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위한 변명

가톨릭부산 2015.11.02 15:38 조회 수 : 28

호수 2032호 2010.01.17 
글쓴이 강문석 제노 

강 문 석 제노 / 수필가, 63121057@kepco.co.kr

신도시에서 만난 레지오 단원이 떠나면서 ‘후계자를 키우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나처럼 허물 많은 사람더러 후계자라니, 좀 뜨악했지만 평소 언행이 다르지 않았던 그가 농담을 할 리는 없다 싶어서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는 뜨끔했다. 나이든 사람이 조용히 있질 못하고 본당의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사진을 찍겠다고 나서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로부터 ‘요즘도 사진 많이 찍느냐’는 인사를 자주 듣는다. 이러한 인사를 들을 정도로 그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나의 사진에 대한 집착이 때론 당혹스럽기도 하다. 군복무 시절, 어쩌다가 모범사병에 뽑혀 부상으로 받은 B5용지 크기의 인물사진은 나로 하여금 구닥다리 중고 카메라를 구입하게 만들었다. 취미활동이란 중간에 권태가 오거나 소홀해질 법도 한데 나의 사진에 대한 집착은 좀 유별났던 모양. 요즘도 업무에는 물론 가벼운 외출에 나설 때라도 카메라가 손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하지만 근년에 와서는 가끔씩 끈질기게 사진에 매달려온 40여 년의 세월이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에 쏟았던 그 열정으로 딴 일에 매달렸더라면 무언가를 이루지나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몸 안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고개를 내미는 것 같다. 하지만 사진에 손대지 않았다면 어찌 전시회를 통해 환경오염의 심각성이나 백두산에 서린 분단의 아픔을 전할 수 있었으랴. 몸담았던 일터의 사옥 곳곳마다 대형 사진작품을 걸어두고 떠나온 후 가끔씩 후배들이 찬사와 격려를 해올 때면 그들을 만난 것 이상으로 따뜻함을 느끼는 것까지도…. 

작년 6월, 감곡성지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한 토막. 그날 우리 일행은 각지에서 먼저 도착한 교우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옆문을 통해서 들어가야만 했다. 아마도 정문 입구에는 ‘성전 안 사진 촬영금지’란 안내문이 붙어 있었던 모양이다. 미사를 집전하던 신부님이 겁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를 보고는 기가 차다는 식으로 씩 웃자 순례자들도 따라 웃었다. 그때 찍은 몇 장의 사진을 보내드린 인연으로 지금까지 그곳에서 이삼일마다 한 차례씩 보내오는 자료를 통해 부족한 교리지식과 선교에 관한 노하우까지 충전하게 되었다. 

앞서 소개한 ‘나이 들어서 나서지 말았으면…’하는 충고는 꼭 받아들여야겠지만 지금껏 미적거리고 있는 것은 휴대폰 수량보다 훨씬 더 많은 카메라가 보급된 현실에서도 내가 찍은 것 만한 사진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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