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와 태풍

가톨릭부산 2015.11.02 15:26 조회 수 : 25

호수 2018호 2009.10.25 
글쓴이 김 루시아 수녀 

나보따스에서 어린이들과 생활한지 3년 만에 3주 휴가를 받았다. 3년은 긴 시간도 아닌데 한국의 모습이 많이 달라보는 것은 쓰레기와 매연이 가득한 나보따스에서 살았기 때문일까? 더 높아진 가을 하늘과 아름다운 공항 길을 지나 본원에 도착하여 수녀님들의 환영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주님과 함께 하는 8일 피정을 시작했다. 침묵 속에서 기도하고 성서를 읽고 뒷산을 산책하고 나보따스의 생활도 말씀드리고… 모두가 바쁘게 일하는 시간에 주님과 마주 앉아 기도할 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가! 내가 수녀인 것이 참 좋다.

피정을 마치고 부모님이 계신 산소를 찾아가 기도하고 가족들을 만나 이야기꽃을 피웠다. 필리핀 이야기를 듣던 조카가 "이모! 이제 필리핀에 다시 안가는 거죠?" 한다. "아니 다시 갈 건데"하니 3년이나 살았는데 왜 또 가요?"하며 응석 어린 항의로 사랑을 표현하기에 "고생하시는 예수님을 도와드려야 해" 하니 마지못해 끄덕인다. 봉투 하나를 내미니 언니와 다른 조카들도 필요한데 쓰라며 챙겨준다. 아껴주는 가족이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 지를 느끼며 소식이 멀었던 친구와 동료 수녀님들을 만나 풍성한 대접을 받았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올 때는 현장 체험을 위해 필리핀으로 오는 수녀님들과 함께 했다. 짐이 많아 걱정했지만 별문제 없이 탑승을 했는데 비행기가 30분이나 지연되더니 마닐라 공항에 도착해서는 몰아치는 폭우 때문에 착륙을 못하고 선회하면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심한 멀미 속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과 긴장으로 눈 먼 이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마르10, 47)하고 예수님께 외치듯이 묵주를 꼭 잡고 "주님, 필리핀에 무사히 도착하게 해주십시오."하고 열심히 기도했다. 가까운 공항으로 이동하여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 무사히 착륙하기까지 3시간이 걸렸다. 

많이 걱정하며 기다리던 성당 식구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해주니 비행기 멀미도 긴장했던 마음도 사라졌으나 전해주는 태풍 소식은 비참했다.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겨 많은 사람들이 죽고 집들은 잠기거나 떠내려가 머물 곳이 없는데 또 다른 태풍이 산사태를 일으키며 마을을 삼켜버려 수많은 수재민이 발생했다. 어린이집은 큰 피해는 없었지만 일주일동안 수업을 못했다. 사람들이 빗속에서 살다보니 감기와 피부병이 많아지고 약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수녀원으로 찾아왔다. 그들을 도와주며 한국에서 보내 온 옷들을 정리하여 수재민에게 보냈다. 주님! 모든 이가 자연과 더불어 살며 자연을 아끼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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