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결혼식

가톨릭부산 2015.11.02 12:00 조회 수 : 32

호수 2013호 2009.09.27 
글쓴이 김 루시아 수녀 

집안에 딸이 셋이면 기둥뿌리도 안 남아난다는 한국의 결혼 풍습과는 달리 필리핀은 모든 경비를 남자들이 부담한다. 그러기에 필리핀 아가씨와 결혼한 한국의 노총각도 모든 경비를 부담했다. 중매인의 입장에서 안쓰러웠지만 주님의 축복이 가득담긴 결혼식이었기에 마음 흐뭇했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은 결혼식도 못하고 산다. 우리 유치원에 교사도 초등학교 4년 때 섬마을을 떠나 친척집에서 일을 하며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여 남자를 만났지만 결혼할 돈이 없었다. 부모님의 도움은 바랄수도 없기에 수녀들이 선물로 옷을 한 벌 해주고 수녀원 기도실에서 혼배성사를 받도록 해 주었다. 뱃삯이 없어 못 오는 가족들을 대신하여 교실에다 음식을 준비하고 축하식을 해주니 눈물을 가득 담고 활짝 웃는다. 단칸 셋방에서 신혼을 보내는 교사를 보며 안쓰러워했는데 한국의 노총각은 스스로 가난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했다. 

마흔 넘은 노총각이 결혼할 생각은 안하고 직장에서 동호회를 조직하여 SOS 마을과 나보따스 어린이들을 돕는 일로 바쁘게 지냈다. 식비와 장학금을 보내주고 회원들의 뜻을 모아 쓰레기 공터에 놀이터도 만들어 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결혼을 권하니 “수녀님이 소개해주면 생각해 볼께요”라고 농담한 것이 진담이 되었다. 명문대를 졸업한 아가씨가 성당에서 봉사하고 있기에 만남을 주선했는데 본인과 가족들 모두가 좋아했다. 국제결혼이라 준비하는 서류도 많고 필리핀을 오가는 경비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두 사람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 주님의 배려로 어린이들을 돕던 중에 이루어진 일이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300명의 어린이를 초대하여 선물을 나눠주고 결혼식도 아직 건축 중인 나보따스성당에서 하겠다고 했다. 

나보따스에는 배고픈 어린이들이 3천명도 넘지만 300개의 티켓을 만들어 5~6세의 어린이를 우선으로 하고 그들의 뜻에 따라 쌀 3k와 샌들 그리고 티셔츠를 준비했다. 성당은 비가 오면 물이 차기에 걱정했는데 아침에만 잠깐 쏟아지고 혼배미사가 있는 오후에는 빗살이 약해졌다. 예쁜 티셔츠를 입고 마당에서 기다리던 300명의 어린이들이 퇴장하는 신혼부부를 환호송으로 맞이해 주었다. 드레스를 입은 예쁜 신부와 신랑이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니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축하객들이 가슴 뭉클해 하며 신혼부부의 마음 씀씀이를 칭찬했다. 주님께서도 기뻐하셨을 것이다. 한 가지 마음 아픈 것은 티켓 없이 기다리던 많은 어린이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어떻게 하면 모두에게 선물을 나눠줄 수 있을까?

주님! 새 가정을 이루는 신혼부부의 모든 삶을 복으로 채워주시고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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