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대축일을 맞아…

가톨릭부산 2015.11.02 11:58 조회 수 : 4

호수 2012호 2009.09.20 
글쓴이 김종일 

200여 년 전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후, 그 씨앗을 틔우기 위해 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는 것은 한국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더욱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성직자, 수도자의 전교 없이 평신도 스스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고, 온갖 잔혹한 고문을 견뎌내고 죽음으로 신앙을 지켜낸 민족이라는 사실엔 특별한 자부심 또한 가지고 있는 듯하다.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난 지금도 가끔씩, ‘나에게 순교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잔혹한 고문을 이겨내고 신앙을 지켜낼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런 상황이 가능하면 생기지 않도록, 하지만 생긴다면 두려움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낼 힘을 주십사 주님께 매달리고 매달릴 뿐이다’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나의 다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두렵고 두려운 질문이다.

‘아니,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댄데 뜬금없이 순교 걱정이냐. 여기가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고…’하며 의아해 하실 분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순교는 단순히 신앙의 자유 여부 때문에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나 심지어 같은 신앙을 국교로 삼는 나라 안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순교를 강요당하는 상황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구약의 많은 예언자나 선지자들, 신약의 예언자 요한,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삶을 규정짓고 이끌어 주시는 예수님이 바로 그 대표적인 분들이 아니겠는가. 이분들은 종교의 자유 때문에 죽음을 강요당하신 분들이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불의한 상황들에 맞서다 돌아가신 분들이다. 지금도 남미 여러 국가에서는 서슬 퍼런 독재자의 횡포에 대항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80년대 군부독재가 지배하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단순히 이념의 차이나 개인의 신념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도 있겠지만,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돌보라’는 하느님의 가르침 때문에 죽어간 사람도 많았다. 

신앙은 단순히 사후 영혼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신앙은 내 삶 전체를 규정짓고 이끌어 나가는 원동력이며, 하느님께서 명하신 소명이기도 하다. 순교하신 조상들을 기념하는 오늘, 내 신앙의 깊이가 불의한 상황에 순교를 각오하고 맞설 수 있을만한지를 곰곰 되돌아보는 것도 뜻 깊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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