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 누구도 소외받지 않고, 차별로부터 자유롭고, 인간다운 존중과 존엄을 지켜갈 수 있는 사회를 이루어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내가 있어 네가 있는 세상이 아니라, 네가 있어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의식 속에 늘 감사 한 마음으로 살고자 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희생과 헌신하다’라는 말은 아예 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서는 마치 자신의 탓인 양 괴로워하고 힘들어 한다. 가진 것 없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 이웃과 함께 사랑하며 그야말로 나그네의 삶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역할을 다 하고 에너지를 소진 한 다음에는 그냥 떠나면 되는 삶이라 생각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이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 하고 괴로워한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인간다운 삶인가? 하고 자문한다. 이들이 희망을 말하기는커녕 캄캄한 절망의 긴 터널에서 언제 빠져 나갈 수 있을지 낙담한다. 좌절한 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포기할 것 같아 안타깝고 답답하다. 이웃들이 살아갈수록 삶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이다. 쉬는 날도 없이 열심히 일하지만, 언제 쫓겨나야 할 지 불안하고, 삶의 질적 향상은 그냥 바람뿐이다. 죽지 못해 겨우 연명해 가는 빈곤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럴진대 그들에게 이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건강한 삶을 이야기하기엔 사실상 너무 버겁다. 삶에 대한 회의와 불특정한 대상에 대해 속절없는 원망과 분노만 쌓여가기 때문이다.
나의 이웃들도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함께 살고 싶어 한다. 가족들과 단란하게 살았던 곳에서 쫓겨나는 이들에게 안락한 보금자리와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하루 벌어 하루살이를 하다시피 하는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가 주어져야 한다. 진정 사람답게 살고 싶어 한다. 이웃과 사랑하고, 가족과 화목하게 살면서 각자의 소망대로 기쁨 속에 하느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이 이웃 사람들의 간절한 희망이다. 그런데, 이 소박한 것이 왜? 이루어지지 않을까? 한 쪽은 넘쳐나고, 한 쪽은 부스러기라도 잡아보려고 온갖 몸부림을 쳐도 잡히는 것은 허탈과 허무뿐이다.
예수님께서 “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라고 물으셨다. 억울한 이들의 분노의 외침을 듣지 않으려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눈빛을 마주 볼 용기가 없어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고 말이다. 힘없는 약자들이 강자에게 억압 받는 것을 보고, 가난한 이들이 거리로 내 쫓겨나는 것을 보고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진지하게 물으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