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1997호 2009.06.14 
글쓴이 이원우 아우구스티노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 그 곳 가족들로 구성된 OSJ라는 중창단이 있다. ‘오순절’ 매 음절에서 자음만 따서 표기한 이니셜이다. 말이 중창단이지 그들에게는 대중가요 한 곡을 ‘제창’하기조차 버겁다. 대부분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많은 비장애인들에게 감동을 준다. 한 달 여 전에도 어느 콘서트 장에서 그들은 ‘꿈에 본 내 고향’과 ‘가슴 아프게’를 불렀다. 우정 출연을 한 것이다. 한국 최고의 휘파람 연주가도 와서 ‘휘파람을 불며’를 선보였는데, OSJ가 무대에 섰을 때는 정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그것은 단순히 손바닥이 마주치는 소리가 아니었다. 우리가 장애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메시지였다고나 할까? 이들을 지도하는 L형제와 J 자매, 그리고 직원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눈물겹다. 

평화의 마을 가족 성당 성전에서 미사에 참례해 보자. 신부의 강론이 멋지다. 포커스가 장애 교우들에게 맞추어지기 때문에 알아듣기 쉽다. 그래서 그런지 부모와 같이 더러 찾아오는 어린이들의 얼굴도 편안하기만 하다. 촌철살인이란 말을 이럴 때 써도 될까? 아무튼 5분도 될까 말까 한 시간에 사제는 번뜩이는 복음을 전한다. 

게다가 말이다. 대부분이 OSJ 중창단원들인 그 곳 성가대원들의 성가가 거룩함을 더한다. 물론 그들은 음정이며 박자, 발성 등이 제대로 맞지 않다. 그런데도 그들의 합창(?)이 한없이 거룩하게 들리는 것이다. 인간 승리 아니 주님 승리를 귀로써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다. 우리는 더러 성가를 통해서 기도의 두 배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성가를 부르는 것과 듣는 것, 어느 쪽에서 더 주님의 현존을 확인할 수 있을까? 엉뚱한 자문자답에서 후자 쪽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OSJ는 ‘평화의 마을=감동’ 라는 등식의 한 부분이다. 평화의 마을에서 ‘치유’를 받은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그래서 자주 듣는가 보다. 끝없는 감동의 그 현장이 참 좋다. 마더 데레사 수녀도 우리나라에 살았었다면, 거기 가끔 걸음을 하였으리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호수 제목 글쓴이
2903호 2025. 12. 21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윤석인 로사 
2902호 2025. 12. 14  ‘자선’,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의 가르침 원성현 스테파노 
2901호 2025. 12. 7  “이주사목에 대한 교회적 관심을 새롭게” 차광준 신부 
2899호 2025. 11. 23  임마누엘, 나와 함께 하시는 이예은 그라시아 
2897호 2025. 11. 9  2025년 부산교구 평신도의 날 행사에 초대합니다. 추승학 베드로 
2896호 2025. 11. 2  나를 돌아보게 한 눈빛 김경란 안나 
2895호 2025. 10. 26  삶의 전환점에서 소중한 만남 김지수 프리실라 
2893호 2025. 10. 12  우리는 선교사입니다. 정성호 신부 
2892호 2025. 10. 6  생손앓이 박선정 헬레나 
2891호 2025. 10. 5  시련의 터널에서 희망으로! 차재연 마리아 
2890호 2025. 9. 28  사랑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김동섭 바오로 
2889호 2025. 9. 21  착한 이의 불행, 신앙의 대답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2888호 2025. 9. 14  순교자의 십자가 우세민 윤일요한 
2887호 2025. 9. 7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권오성 아우구스티노 
2886호 2025. 8. 31  희년과 축성 생활의 해 김길자 베네딕다 수녀 
2885호 2025. 8. 24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탁은수 베드로 
2884호 2025. 8. 17  ‘옛날 옛적에’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2883호 2025. 8. 15  허리띠로 전하는 사랑의 증표 박시현 가브리엘라 
2882호 2025. 8. 10  넘어진 자리에서 시작된 기도 조규옥 데레사 
2881호 2025. 8. 3  십자가 조정현 글리체리아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