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

가톨릭부산 2015.11.02 11:41 조회 수 : 30

호수 1995호 2009.05.31 
글쓴이 이명순 막달레나 

제 신상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태어나서 줄곧 부산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부산 옆 양산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입니다. 노동사목에서 일했던 만 6년 동안 수차례 사무실 이사를 해서 이사라는 걸 겁먹거나 걱정하지 않았는데, 사는 집을 옮기게 되니 여러 가지로 신경 쓸 것도 많고 적응하느라 힘을 빼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십니다. “출퇴근이 힘들어서 우짜노? 괜찮습니까?”라면서요. 네. 사실 좀 먼 거리이긴 한데, 머니까 더 긴장해서 일찍 일어나지고, 그렇게 힘들진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노동 관계 일을 하는 대청동의 사목사무실에서 더 먼 곳으로 갔는데도 노동자들하고는 더욱 가까워진 겁니다. 사는 데가 도시 바깥이라, 집 가까이에 공장들이 있고 기숙사들이 있으니까 노동자들하고 저는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서 동네 친구가 된 겁니다. 사는 곳이 바뀌니 사람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노동사목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자원 봉사자들과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이번 6월에 있을 교육은 피정으로 운영할 건데, 주제가 ‘너 어디 있느냐?(창세기 3, 9)’입니다. 활동가들에겐 특히 중요한 화두인지 같은 주제로 노동사목 실무자들이 사순 피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도 나를 모를 때, 삶이 혼란스러울 때 이 구절을 깊이 묵상하면 어렴풋하게라도 답이 보일 거라 생각합니다. ‘어디에 있느냐?’라는 물음에는 다양한 답들이 나올 수 있겠는데, 저는 제가 있어야 할 곳을 생각해 봤습니다. 이번에 이사라는 걸 하면서 몸을 두는 데가 참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삶의 자리가 어디냐에 따라 보는 것,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서 다른 철학을 하게 되니까요. 

이번 주 토요일에는 생일을 맞은 노동자들 단체 파티가 있다고 놀러 오랍니다. 전에는 그냥, 파티하나보다 그랬는데 집 근처에서 생일 잔치를 한다고 하니 가봐야 되나 고민을 하게 됩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다른 나라에서 맞는 생일은 어떨까, 의미가 남다르겠지? 이주노동자 사정이나 법을 아는 한국 친구가 놀러 가면 좋아할 거야.’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집니다. 아마 조촐한 밥상이 있는 잔치에 이웃자격으로 참석할 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서 상담성 이야기를 하자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쑥스러워도 한 번 가보렵니다. 이왕 노동자들 가까이에 살게 된 거 ‘용기를 내어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을 마음에 담고 진짜 활동가처럼 살아봐야지요.

호수 제목 글쓴이
2905호 2025. 12. 28  하느님의 무기 조영만 신부 
2903호 2025. 12. 21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윤석인 로사 
2902호 2025. 12. 14  ‘자선’,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의 가르침 원성현 스테파노 
2901호 2025. 12. 7  “이주사목에 대한 교회적 관심을 새롭게” 차광준 신부 
2899호 2025. 11. 23  임마누엘, 나와 함께 하시는 이예은 그라시아 
2897호 2025. 11. 9  2025년 부산교구 평신도의 날 행사에 초대합니다. 추승학 베드로 
2896호 2025. 11. 2  나를 돌아보게 한 눈빛 김경란 안나 
2895호 2025. 10. 26  삶의 전환점에서 소중한 만남 김지수 프리실라 
2893호 2025. 10. 12  우리는 선교사입니다. 정성호 신부 
2892호 2025. 10. 6  생손앓이 박선정 헬레나 
2891호 2025. 10. 5  시련의 터널에서 희망으로! 차재연 마리아 
2890호 2025. 9. 28  사랑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김동섭 바오로 
2889호 2025. 9. 21  착한 이의 불행, 신앙의 대답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2888호 2025. 9. 14  순교자의 십자가 우세민 윤일요한 
2887호 2025. 9. 7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권오성 아우구스티노 
2886호 2025. 8. 31  희년과 축성 생활의 해 김길자 베네딕다 수녀 
2885호 2025. 8. 24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탁은수 베드로 
2884호 2025. 8. 17  ‘옛날 옛적에’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2883호 2025. 8. 15  허리띠로 전하는 사랑의 증표 박시현 가브리엘라 
2882호 2025. 8. 10  넘어진 자리에서 시작된 기도 조규옥 데레사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