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목요일에 드린 약속

가톨릭부산 2015.11.02 11:32 조회 수 : 31

호수 1992호 2009.05.10 
글쓴이 김 루시아 수녀 

나보따스의 성목요일 만찬 미사는 오후 5시에 시작되었다. 신부님은 전례 띠를 어깨에 두른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입장하셨고 발 씻는 예식이 시작되었을 때는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신"(요한 13, 4) 예수님처럼 신부님도 큰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후 제자의 발을 정성껏 씻기고 발에 입맞춤까지 하셨다. 그러자 발을 씻은 제자들이 하나씩 일어서서 신부님께 질문했다. "신부님은 교회를 사랑하고 봉사하는 사제로 사시겠습니까?" "동료 사제와 화목하게 지내겠습니까?" "교황님과 교구장님께 순명하며 사시겠습니까?" "가난하게 사시겠습니까?" "성서를 읽고 신자들을 가르치고 노인들과 어린이들을 돌보며 사시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사제로 사실 것을 약속하시겠습니까?" 등을 묻자 신부님이 "예! 약속하겠습니다." 하고 겸손하게 대답하는 모습이 너무도 성스러웠다. '예식이 끝났나?' 했는데 제자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내려와 신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중 한 팀이 내게로 왔다. 얼마나 당황했던지 "주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요한 13, 8)" 라고 말한 베드로처럼 거절도 못하고 얼결에 양말을 벗으니 정성껏 씻겨주고 입맞춤까지 하는 것이다. 발을 씻기는 제자들을 바라보며 드린 나의 기도는 "주님! 저도 나보따스의 어린이들을 씻기고 돌보며 살려 노력하겠습니다." 라는 약속이었다. 발 씻는 예식이 끝나자 신부님이 제대 중앙에 두 손을 모으고 서셨다. 그러자 모든 신자들이 신부님을 향해 오른손을 들고 약속을 잘 지키는 신부님 되시라고 은총을 청하는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드리는 신자들도 기도를 받고 있는 신부님도 너무 아름답고 거룩해 보였다 오늘의 전례는 미사 후에 7개 성당을 순례하며 예수님의 가상칠언을 묵상하는 날이라 하여 신부님을 따라 나가자 마닐라 온 거리가 순례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기적이 일어났던 성당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지 경찰들이 나와서 질서를 잡아주고 있었다. 다른 성당도 밀려가고 밀려나와야 했기에 몇 개 성당을 돌고 나자 사람들에 지쳐서 조배도 못하겠고 쉬고만 싶었다. 그러나 7개 성당을 다 돌아야 은총을 받는다 하기에 피곤을 꾹 참고 따라다니다 11시가 넘어 돌아오니 우리 성당은 몇 명의 신자들과 복사들만이 성체를 지키고 있었다. 밀려오고 밀려다니던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갑자기 우리 예수님이 너무도 초라하고 외로워 보였다. 비바람을 막아 줄 지붕도 창문도 없는 가난한 성당이지만 아름다운 전례가 있고 착한 사람들이 모이는 주님의 집인데… 조배하는 동안 내내 마음이 아팠다. 주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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