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부활

가톨릭부산 2015.11.02 11:28 조회 수 : 22

호수 1989호 2009.04.19 
글쓴이 정여송 스콜라스티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용서와 사랑으로 점철된 부활이다. 모진 고통과 고난을 참아내고, 온갖 곤욕과 질타를 끌어안음으로써 용해된 부활이다. 그래서 예수님 부활은 우리의 삶을 활기차고 풍요롭게 만든다. 어떠한 역경에서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된다. 

참새 부리 만하게 싹을 틔우던 나무 잎새들이 부활을 노래하듯 연두 빛으로 찬연하다. 겨우내 모진 삭풍을 이겨내고 잘 견뎌내더니 살얼음 커튼 재치고 오는 봄을 맞이해 피워낸 것이다. 땅속에서는 진작부터 아지랑이가 희망을 준비하였고, 땅위에서는 따스한 햇볕과 훈훈한 바람이 봄 길을 열었다. 기다림이 지루하다고 포기한 사람들과, 세상에 대고 투정하는 어깨 처진 사람들에게 좋은 이웃처럼 봄이 환하게 부활하였다.

동네 한 가운데 놀고 있는 터가 하나 있었다. 풀이 자라나고 온갖 쓰레기들이 난무하였다. 보다 못한 주인은 쓰레기를 모두 치우고, 풀을 뽑아낸 다음 밭을 갈아 상추씨를 뿌렸다. 상추가 먹음직스럽게 자랐을 무렵 “필요한 만큼 뽑아 가세요”라는 팻말을 세워놓았다. 몰래 쓰레기를 갖다놓던 주민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상추를 뽑아가는 일만이 아니라 옆에 난 잡초도 뽑아내고, 뽑아낸 자리에 다시 씨앗을 뿌리는 것이었다. 싱그러운 상추밭으로의 부활이 이루어진 셈이다. 

예심이는 소화영아원에서 살고 있다. 3년 전 이웃 젬마 집에 위탁되어 두어 달씩 머물다 가곤하던 네 살배기 아이였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어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서는 것은 고사하고 앉기조차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젬마가 멀리 이사를 가고난 후로는 예심이를 볼 수 없었다. 소공동체 모임에서 우연히 예심이의 소식을 들었다. 유치원에 다닌다고. 그것도 걸어서 잘 다니고 있다고. 순간 감사하다는 말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기적 같은 그 일이 부활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부활은 희망이다. 고난을 이겨내면 영광이 찾아오고, 슬픔을 넘어서면 기쁨이 기다리고 있는 희망이다. 메말랐던 나무들이 연두 빛으로 물들고, 쓰레기 밭이 싱그러운 상추밭이 되고, 앉기도 힘들었던 예심이가 걷게 된 일은 분명, 예수님의 부활처럼 격랑 끝에 찾아온 찬란한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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