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수 | 2530호 2019.02.17 |
|---|---|
| 글쓴이 | 최옥 마르타 |
고통의 모서리에 입을 맞추다
최옥 마르타 / 용호성당, 시인 choiok0815@hanmail.net
작년 여름, 새벽에 창문을 닫고 들어오다가 넘어졌다. 방바닥에 깔려있던 얇은 담요를 밟는 순간 미끄러지면서 기도 상 앞에 놓여있던 장궤틀 모서리에 사정없이 등을 박은 것이다. 얼마나 아프던지 정신이 하나도 없고 등을 붙잡고 앉아서 연신 예수님만 부르고 있었다. 잠은 이미 달아났고 찜질팩을 등에 얹으며 통증을 달래다가 문득 예기치 못한 일로 다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이 떠올랐다. 평소에는 생각도 못 하다가 비로소 간절한 마음으로 그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바쳤다. 그렇게 아침이 되었다. 등에 어떤 상처가 생겼는지 겁이 나서 도저히 거울에 비춰볼 수가 없었다.
하루를 보내고 욱신거리는 통증을 치료하려고 병원에 갔더니 등뼈 끝이 살짝 부서졌으며 입원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정말 황당한 마음으로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병원에 누워 있었던 시간은 나에게 휴식 같은 시간이었다. 너무 바쁘게 살았고 바빴던 만큼 나를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병원에 2주일을 머물면서 내 몸에 부족했던 비타민과 영양제를 충분히 공급해 주었고, 맞아야지 하면서 미루고 있었던 대상포진 예방주사까지 맞으면서 내 몸을 돌보는 시간을 가졌다. 주님께서 ‘마르타, 잠시 쉬어가자’ 하시는 것 같았다.
퇴원을 하고 방에 들어서는 순간, 나를 넘어지게 했던 담요가 눈에 들어왔다. 내 등을 숨도 못 쉴 만큼 세게 박았던 장궤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아팠던 순간을 생각하면 둘 다 미련 없이 내다 버리거나 집어던졌어야 될 물건들이다. 하지만 그 담요는 내가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 밤마다 침낭 위에서 내 몸을 따뜻이 덮어주었으며, 장궤틀은 알고 지내는 동생 남편이 손수 만들어 준 것으로 아침기도 때 주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사용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둘 다 그렇게 소중한 물건인데 나를 그토록 아프게 하고 큰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때 나에게 휴식이 필요함을 아셨고 그 상처를 통하여 잠시 쉬어갈 시간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악도 선으로 이끄시고 고통도 축복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섭리였다.
얇은 보라색 담요를 만지작거리며 산티아고 길에서 밤마다 나를 감싸주던 포근함을 다시 느껴보았다. 장궤틀을 가슴에 안고 내 등짝에 사정없이 박혔던 모서리에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 모서리의 나뭇결이 입술에 닿았다.
그 모서리에도 하느님의 사랑이 있었다.
| 호수 | 제목 | 글쓴이 |
|---|---|---|
| 2903호 2025. 12. 21 |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 윤석인 로사 |
| 2902호 2025. 12. 14 | ‘자선’,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의 가르침 | 원성현 스테파노 |
| 2901호 2025. 12. 7 | “이주사목에 대한 교회적 관심을 새롭게” | 차광준 신부 |
| 2899호 2025. 11. 23 | 임마누엘, 나와 함께 하시는 | 이예은 그라시아 |
| 2897호 2025. 11. 9 | 2025년 부산교구 평신도의 날 행사에 초대합니다. | 추승학 베드로 |
| 2896호 2025. 11. 2 | 나를 돌아보게 한 눈빛 | 김경란 안나 |
| 2895호 2025. 10. 26 | 삶의 전환점에서 소중한 만남 | 김지수 프리실라 |
| 2893호 2025. 10. 12 | 우리는 선교사입니다. | 정성호 신부 |
| 2892호 2025. 10. 6 | 생손앓이 | 박선정 헬레나 |
| 2891호 2025. 10. 5 | 시련의 터널에서 희망으로! | 차재연 마리아 |
| 2890호 2025. 9. 28 | 사랑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 김동섭 바오로 |
| 2889호 2025. 9. 21 | 착한 이의 불행, 신앙의 대답 |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
| 2888호 2025. 9. 14 | 순교자의 십자가 | 우세민 윤일요한 |
| 2887호 2025. 9. 7 |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 권오성 아우구스티노 |
| 2886호 2025. 8. 31 | 희년과 축성 생활의 해 | 김길자 베네딕다 수녀 |
| 2885호 2025. 8. 24 |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 탁은수 베드로 |
| 2884호 2025. 8. 17 | ‘옛날 옛적에’ |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
| 2883호 2025. 8. 15 | 허리띠로 전하는 사랑의 증표 | 박시현 가브리엘라 |
| 2882호 2025. 8. 10 | 넘어진 자리에서 시작된 기도 | 조규옥 데레사 |
| 2881호 2025. 8. 3 | 십자가 | 조정현 글리체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