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527호 2019.0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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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종석 신부 |
군종병 요한이
박종석 신부 / 해군중앙성당 주임
2018년 10월 어느 평일, 이○○ 요한 일병이 해군중앙성당 군종병으로 전입 왔습니다. 당시 요한이는 본당 신부인 저를 구원자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백령도에서 근무하던 자신을 서울로 데려왔으니 말이지요. 마치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해 약속된 땅을 밟기라도 한 듯, 요한이는 해맑은 미소와 선한 눈빛으로 저와 첫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반갑다. 요한아. 와줘서 고마워.” 성당 자매님들은 백령도에서 온 요한이를 아들 대하듯 참 따뜻이 맞이해주었습니다. 그 덕에 요한이의 긴장됐던 마음이 생각보다 빨리 풀릴 수 있었나 봅니다.
요한이가 온 후 첫 주일이 되었습니다. 형제님들과는 초면이라 그런지 요한이의 얼굴은 다소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전혀 걱정하지 말고 큰 목소리로만 인사하면 된다고 귀띔을 해주었지요. 계급이 소장(☆☆)인 사목회장님께 요한이를 데려가 소개했습니다. 반갑다며 악수를 권하는 회장님 앞에서 요한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일병. 이.○.○! 안녕하세요!!!” 요한이는 함께 있던 신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물하고야 말았습니다. 요한이의 진정성이 어리바리함을 뚫고 신자들 마음에 닿았겠지요.
부대 생활 적응하랴 성당 업무 배우랴, 요한이는 바쁩니다. 마침 전입 다음 주부터는 성당 리모델링 공사가 이어졌습니다. 공사가 한창 중이던 12월엔 성탄 행사 준비도 해야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분주했을 요한이에게 일이 많아 힘들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신부님, 저는 한 번도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미사를 드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직은 서툴고 실수도 많아서 죄송한 마음이 있지만, 가족들이 도와줘서 힘들지 않습니다.” 저는 처리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는데 요한이에겐 아니더군요.
“머리로 보면 골치가 아플 거고 가슴으로 보면 마음이 아플 거야. 너는 마음 아파하는 신부가 되길 바란다.” 한 원로 사제가 새사제에게 했던 조언입니다. 돌이켜보면 골치 아팠던 일이 많았습니다. 신자들이나 어떤 일을 대할 때 머리를 많이 굴리려 한 탓이겠지요. 그저 주어지는 순간 주님의 뜻을 묻고 답했으면 되었을 것을, 그리하지 못했나 봅니다. 오늘도 군종병 요한이에게 배웁니다. 주어진 것을 일로만 여기지 않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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